대기실
운주루 굴뚝 /HG.Park
고향 길
2019. 3. 1. 07:32
운주루 굴뚝
아름다운 섬진강에 흠뻑 빠졌다가도
누구나 잠시 한눈을 팔 수밖에 없는 곳,
노고단 산줄기가 고운 비단치마를 펼친
올망졸망 고적한 마을,
겨울 해가 중천을 지날 즈음 운조루를 찾았다.
운조루 곳곳에는 천년 전의 시간이 머무는 듯
고적하기 그지없는 가운데
집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는 동안
그들의 도란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중략===
그런데 이곳 운조루 굴뚝은 참으로 특이했다.
채 1m도 안 될 정도로 낮았다.
굴뚝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앉아있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중략===
천상의 날개를 가진 모든 것들이 퇴화하여 지
상의 솟대로 박제화된 오늘날,
굴뚝 연기를 통해 형편을 읽고 소통했던 지난날과 달리,
지금 우리는
이웃이 굶는지 밥이 익는지도알지 못하고
벽에 같혀 살아간다.
옆집에서 대사를 치러도 연기 조차 나지 않고,
곡기를 끊은 이웃이 수십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 되어도
무감각한 시대를 살고 있다.
굴뚝을 높이 세워 연기를 모락모락 날려 보내고 싶다.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
구들과 굴뚝을 뜨뜻하게 데우고 싶다.
길 잃은 굴뚝새 한 마리 찾아와
포근히 잠 잘수 있도록 우리 모두에게
그렇게 굴뚝이 되고, 연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