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

천변을 걷는 개 / HG.Park

고향 길 2019. 3. 10. 07:24



천변을 걷는

의외의 장소에서 맞닥트린 짐승을 보고 가슴이 콩닥거렸다. 숨어야 하나?

도망갈까?

하지만 그건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체면을 구기는 일이다.

노루 꼬리만큼 남은 해가 그림자를 길게 누일때 집을 나섰다.

산책길엔 어느새 인적이 끊겼지만 노을 진 풍경을 즐기기로했다.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저만치 앞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있었다.

갈대숲에서 걸어 나온것은 덩치가 큰 백구였다.

흰털은 지저분하여 잿빛에 가까웠다.미친 개는 아닐까? 더럭 겁이 났다.

몸을 숨길만한 곳도 다른 길도 없다.

제발 비켜주면 좋으련만 낯선 사람을 보고도 피할 생각응 커녕 걸음이 당당하다.

태연을 가장한 내 걸음은 오히려 속도를 못 낸다.

짖지 않는 개가 무섭다는데 가까이 왔을때 공격하면 어떡 하나?

발을 구르는 위협쯤은 눈도 꿈적 안할 덩치다.'돌맹이를 들까?

아니,오 히려 화만 돋울거야.'

머릿속은 분주한데 몸은 체면에 걸린 듯 무방비 상태다.

'제발 비켜다오,너는 길이 아니어도 잘 다니잖니,' 간절하게 텔레파시를 보내

지만 내 부탁을 접수할 생각은 반푼어치도 없어 보안다.5미터,3미터,거리가

좁혀질수록 바짝 긴장하는 나에 비해 녀석은 배포가 꽤나 두둑해 보인다.

걸음의 주저함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드디어 맞닥트렸을 때 오금이 굳어 버렸다.

그러나 녀석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 하고 유유히 지나친다.

무사했으니 고마운 일이다.그런데 이 찜찜한 기분은 뭐람,

떠돌이 짐승을 두고 전전긍긍하는 내 깜냥을 들켰단 말인가.적수가 못 되는

상대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고구의 여유인가, 뒤돌아보니 녀석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나를 돌아본다.한심한듯 쳐다보다가 '세상은 믿고 사는거야!'

일갈 하고는 리드미컬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천변을 걸어간다,

위협을 가한 것도 아닌 데 왜 불한당 취급을 하느냐고 따지지 않는것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