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를 가다

제 7 일 - 크로아티아 - 두브로브닉 - 1

고향 길 2018. 8. 21. 11:36


두브로브닉

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아름다운 해안 도시이다. 7세기에 도시가 만들어져 라구사(Ragusa) 공화국되어 이탈리아 베네치아 경쟁한 아드리아 해안 유일의 해상무역 도시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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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부터 발칸과
이탈리아의 무역 중심지로 막강한 富()를 축적했으며, 11
13세기에는 금·은의 수출항으로 번영하였다. 십자군 전쟁 뒤 베네치아 군주 아래 있다가(1205~1358)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때 도시가 요새화되고 지협의 각 측에 2개의 항구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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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 무역의 전성기를 맞았고 엄격한 사회 계급 체계를 유지하며 유럽에서 처음으로 노예 매매제를 폐지(1416)하는 등 높은 의식을 가진 도시였다. 1667년 큰 지진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나폴레옹 전쟁 때 다시 옛날의 번영을 누렸다.

1815
년 빈 의회 결의안에 의해
오스트리아 제국(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합병되었다가 1918 세르비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1945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가 되었다.
199110,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군이 3개월에 걸쳐 총 공격을 해와 도시 전체가 파괴되었다. 1994년 구시가지가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의해 세계문화유산지정되었다. 1999년부터 도시 복원작업이 시작되어 성채, 왕궁, 수도원, 교회 등 역사적인 기념물 가운데 가장 크게 손상된 건물들이 복원되었고 옛 명성을 되찾을 만큼 아름다운 해안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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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부터 825일까지 열리는 여름 축제도 다시 개최되고 있다. 두브로브니크
달마티아 문학의 중심지로 크로아티아 문학의 일부를 이룬다. 식품
·포도주·올리브유 등의 생산이 성하다.
'진정한 낙원' 두브로브니크
비단실의 맨 끝에 부드로브니크가 있다. 크로아티아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크로아티아의 최남단으로 지중해로 향하는 통로다.
아일랜드의 문호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찾는 이가 있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그리고 보라"고 했다.
내전이 치열했을 때 이곳도 폭격의 대상이었다.
유럽의 유명한 인류ㆍ역사학자들이 해안에 배를 띄우고 "우리를 먼저 폭파하라"며 방어했다. 덕분에 무사했다. 전쟁이 이 도시를 파괴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는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세기부터 17세기까지 둘레 2㎞의 견고한 성을 쌓았다.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도 이 성을 쌓는 데 거액을 희사했다고 한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성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터다. 중심거리는 상가이고 외곽의 골목은 거주지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에는 빨래가 널려있고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논다.

밤풍경이 압권이다. 천년의 세월을 꿋꿋하게 버틴 건물들이 은은한 조명을 받는 가운데 사람들이 산책을 한다. 세월의 흐름을 이야기하듯 유리처럼 닳아버린 대리석 보도가 불빛을 반사한다.

천년이 넘는 건물 곳곳에 재즈바가 있다. 분위기는 고풍(古風)이 아니다.() 그 자체다. 
스톤을 출발, 이곳 두브로브닉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우리는 숙소로 정해진 섬으로 가고있다. 아래의 사진들은 섬으로 들어가면서 잡은 몇장의 사진들이다. 첫인상은 아~ 역시 아름다운 항구 도시구나 ! 과연 유럽인들이 사랑 할만하구나 ! 였다.
목적지 두브로브닉에 도착하자 즉시 우리들 숙소가 정해진 OTOK ISLAND 을 향해 출발하였다.


달리는 수상택시에서 잡은 두브로브닉 다리.



우리 팀은 먼저 도착, 호텔앞 벤치에서 느긋하게 후속 부대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제 2 팀이 들어오고 있다. 흥겨운 모습이라기 보다 패잔병 같은 모습들이다

호텔 이름은 KOLOCEP.

호텔 옥외 풀장인데 늦어서 그런가 사람들이 없다. 9월 9일 오늘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 내일서부터 본격적인 두브로브닉 관광이 시작된다.

사진은 확실히 빛의 예술이다. 저녁 노을에 호텔 주변이 붉게 물들어 가며 그 아름다움을 더해간다.

SUNSET 을 감상하기 위해 부두가로 나와 븕게 물들어가는 황혼을 담었다



생맥주를 시켜 갈증을 달래며 환담을 나누고 있는데 한국 사람이냐고 말을 걸어온다. 간단한 한국말은 할수가 있다고 하면서 3년간 한국에서 일을했단다. 한국인이 이 섬에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는데 한국말이 들려 반가웠다고 한다. 갖이고 간 소주를 보여주니 반가워하면서 엄지손가락으로 남보 원을 만들어 보인다. 영국인으로 30년 넘게 이곳 주민과 동창관계로 맺어져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매년 여름휴가를 이리로 오고 있는데 여기 온지 벌써 1달이 다 되여간다고 한다. 손에 들고있는 잔에 흰색 알콜이 내가 딸아준 소주다. 기뻐 어쩔줄 모른다. 내일 새벽 6시에 만나 산책하기로 굳게 약속하고 헤여졌다.주최측 계획변경으로 아침 6시에 만나 미안하다고 몇번이고 사과를 하고 그날 저녁에 맥주마시자고 약속을 했는데 그것도 역시 지키질 못했다.




섬에서의 첫 아침이다. 좋은 숙소를 찾다보니 섬으로 오게되였다고는 하나 섬에 들어온 보람을 찾지못하다 보니 마음이 편할수가 없다. 여행 주간사가 산책겸 뒷산을 넘어 가기로해 지금 넘으면서 몇장을 담었다.

아침 8시 호텔을 출발해 뒷산을 넘어 작은 포구로 가는중에 잡은 첫사진이다




신기한 표정으로 절벽 아래 바다를 바라보고들 있다. 뭘까?



그 가파른 절벽을 타고 어느 틈에 뚱뗑이 이반 기사가 내려가 수영하고 있는 늘신한 여성에게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저 멀리 선착장이 보인다. 이미자의 섬 마을 선생님 생각이 난다.

수상 택시 보트가 제 1진을 싣고 앞서 달리고 있다.


 두브로브닉 항구에 점점 가까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