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中散策 - 妄想과 斷想 사이 / ,19-11-16 土曜日
비가 내린다. 초겨울 문턱에 을씨년스럽게 비가 내린다. 소매를 파고드는 공기는 차고 매섭다. 들뜬 그러면서 어딘가 달착지근한 분위기에 쌓여 三三五五 웅성대는등산객들이 보이질 안는다. 평소 눈에 익은 대공원 산책길 풍경이 아니다. “뭔 등산을 비를 맞으면서 한데?”. 마누라의 앙칼진 잔소리를 들으며 나온 산행길 이다. 등산 매니어도 아니다. 雨中散策을 즐기는 매니어는 더더욱 아니다. 雨中에도 登山하는 親舊들을 理解못했던 측에 속한다. 그래서 궁금했다. 雨中散策의 魅力은 무엇일까? 어떤 느낌의 맛일까? 왜 우중에도 등산을 强行 할까? 단지 이런 궁금증 호기심으로 나선 산행길 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와 매력을 발견하려고 해도 할게 없다. 첫째 아주 구차스럽고 구질 구질하다. 우산을 받혀들고 걸어야 하니 행동에 제약이 따른다. 등산화에 스며드는 습기와 물기가 싫다. 발이 차면 냉기가 위로 타고 올라 배탈이 나거나 감기에 걸리기에 안성맞춤이다. 때때로 스마트 폰 카메라를 사용 하려고 해도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고궁 돌담을 끼고 바바리 코트의 깃을 올린 멋쟁이가 우산을 들고, 팔장낀 여인과 나란히 걷는다면 그럴듯한 그림이 되겠지만 백팩을 멘 白頭가 雨中登山이던 雨中散策을 할건 못된다는 決論이다.
血氣旺盛한 젊은 時節엔 몰라도 노쇄한 그래서 건강에 조심 조심해야 하는 白頭들에겐 권할게 못된다. B course (inner circle course)를 추적 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긴 분명 한국인데 대공원 산책길 단풍은 카나다나 미국의 어느 공원에 온 눈에 익은 풍경이다. 시민을 위한 공원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던 헐벗고 배곺았던 60`70년 개발시기에 육영수 여사의 집요한 추진에 힘 입어 이루어진 대공원이 였으니, 공원의 레이아웃(layout)에서 부터 樹種과 植樹의 조합과 배열을 미국의 전문가에게 의뢰했을 공산이 크다. 그래서 대공원의 단풍은 그 수종의 멋진 배열과 조합으로 아름다움을 더하게 된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造景 專門家의 머리에는 일곱가지 무지개 빛깔이 틀림없이 있었으리라! 그래서 逆光을 받은 丹楓잎 들은 五色이 조합을 이루어 멋진 빛의 饗宴을 선물한다. 아~ 아름다운 카나다여, 미국이여 ! 카나다 미국까지 갈 필요가 없구나! 그러다가 섬뜩한 생각이 머리를 치고 간다. 이 대리만족이 행여 카나다, 미국을 우습게 보는 감정의 씨앗은 아닐까? 한국에서 미국의 가을단풍을 맛볼수 있다고 미국을 우습게 보고 웃줄대는 못난이 사고는 아닐까? 樹種과 造景, 즉 하드와 소프트 다 선진국 미국의 것이지 우리것은 아닌데...마치 지소미아가 필요없다고 헛소리 치는 문 아무개 같은 과대망상의 시작은 아닐까? 이런 잡다한 생각을 하며 雨中散策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