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길
2020. 6. 14. 07:02
가지다. 내가 가진 것이 나를 가린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보여주느라 나를 보여줄 틈이 없다.
남들도 내가 가진것에 눈을 빼앗겨 나를 보려하지 않는다.
많이 가질수록 많이 가린다.지나치게 많이 가지면 나는 없다.
[사람사전]은 '가리다'를 이렇게 풀었다.'
가리다'와 '가지다'는 같은 말이라 우겼다.
우겼으니 왜 같은 말인지 입증 해야한다.
아침이다.나는 내가 가진것 들을 치렁치렁 가슴에 단다.
아파트다,자동차다.졸업증명서다,명품가방이다, 명함이다.
아것들은 내가 세상과 싸워,인생과 싸워 받아낸 훈장이다.
거울을 본다. 든든,대견,흡족.
훈장에 걸맞은 표정을 준비한 후 밖으로 나간다.걷는다.
치렁치렁 훈장들은 내걸음에맞춰 뒤뚱뒤뚱 춤을 춘다.찰랑찰랑 소리를 낸다.
사람들은 춤을 본다.소리를 본다.빛을 받아 눈을 찌르는 훈장을 본다.
그리고 말한다.지금 내곁으로 훈장이 지나갔어.
지금 내곁으로 밤하늘 별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지나갔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내 곁으로 목 늘어진 양말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지나갔어, 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 곁을 지나간 건 분명 난데 나를 본 사람은 없다.
내 표정을,내 꿈을,내 외로움을 본 사람은 없다.
훈장이 나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더 가져야 할까,얼마나 더 가려야 할까,끝은 있을까.
기저귀에도 수의에도 호주머니는 없는데.
정철 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