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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로회 서신 139호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山 友

고향 길 2020. 10. 4. 12:29

개천절인 3일 오전 서울 광화문 도로에 돌발적인 집회·시위 등을 차단하기 위한 경찰 버스가 줄지어 서 있다.

[출처: 중앙일보] 진중권 "광화문, 재인산성 됐다"···與 "국민 위한 방역의 벽"

 

사랑제일교회 측 변호인단인 강연재 변호사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1번 출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광훈 목사의 입장문(옥중서신)을 대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원로회 서신 139호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 9시쯤 완전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완전무장'이란 소지품을 최소화하고 잡혀갈 것에 대비해 옷을 두껍게 입는 거였다. 백석에 사는 친구가 급히 만나자고 해서 나간다고 했다. 아직도 온 가족이 추석 중이라 광화문에 간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실제로 친구에게도 코로나 치료약을 전해 주기로 약속을 한 터였다.

경복궁역을 비롯한 시청하며 광화문역 등 이승만광장 주변 역들에 지하철이 정차하지 않는다고 알고는 나왔지만 그 시간대부터 할리는 만무하다 했는데 너무 안이한 생각이었다. 경복궁을 그대로 지나쳐버렸다. 집회참석을 방해하려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인 통행의 자유를 철로밑에 깔아버린거다.

백석에서 잠깐 친구를 만나 약을 전하고 곧바로 택시를 탔다. 수색으로 해서 광화문을 피해 남대문으로 가자고 했다. 차들은 뜸했다. 경찰차가 서울역부터 바리케이트를 치고 모든 차량을 서행시켰다. 택시는 봐주는 셈이고 자가용 라인쪽은 철저했다. 남대문을 지척에 두고 내렸는데 기자회견장이 어딘줄 몰라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았다. 모두 검문에 걸려 예정된 화면들은 정지상태였다.

문득 차량시위를 할거라고 예고한 선배 생각이 나서 연락을 해보았다. 가족이 먹을 거리를 챙겨놓고 차량시위 방해를 예상해 자정시간에 광화문에 들어섰다가 경찰기동대에 걸려 벌써 12시간 째 차량 주위를 에워쌓고 못움직이게 하고 있다했다. 차를 포위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냥 귀가하겠다고 길을 비켜달라해도 상황이 종료될때까지는 안됀다는 앵무새 소리가 되돌아왔다니 이또한 불법감금에 다름없는 범죄행위다.

■ 도심 경계가 살벌해 검문을 피해 신세계백화점 쪽으로 발을 옮겼다. 우리공화당 프랑카드가 두어 장 걸린 분수대에서 서너 사람이 1인 시위를 펼치고 있었다. 추미애 퇴진과 공무원 피살사건, 그리고 문재인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있는 단호하고 용기있는 남녀 시위자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더 깊이 발길을 옮겼다. 역시 검문에 걸렸다.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간다고 했다. 돌아가시라고 해서 언성을 높였다. 동선을 입구로만 통하는 일직선으로 설정하고 다른 곳은 폐쇄시켜 책을 구입하는 게 진짜인지 아닌지 따라붙은 경찰이 파악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신경쓴 흔적이 역력했다. 일거수 일투족이 기관에 감시당하는 조지오웰의 소설이 2020년 10월3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

커다란 직사각형의 이승만광장 가로와 세로가 모두 경찰 차량이 벽을 만들어 개미새끼 한마리도 광장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홍콩 시위대가 어떻게 했길래 그 철저한 공안의 경비망을 뚫고 가열찬 집회를 할 수 있었을까? 단 한명도 차량벽을 통과하지 못한 대한민국 시위대의 지능이 홍콩보다 약한건가, 아니면 개미새끼까지 차단한 대한민국 경찰의 지능이 홍콩 경찰보다 앞선건가?

몇군데서 전화가 왔다. 철통경계로 집회는 불발되었지민 한결같이 음성은 밝게 들렸다. 저들이 얼마나 개천절 집회를 두려워 했으면 저희들 끼리는 모여서 마스크도 안쓰고 별짓을 다하면서 오로지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공권력을 앞세워 이토록 집요하게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하게 뭉게는데 그게 바로 정권 말기 단발마의 비명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나름대로 한것이었다.

■ 그렇게 해매다가 오후 6시쯤 집에 돌아왔다.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이 술잔을 권해 마시기 시작했다. 권하지 않았어도 마실 참이었는데 잘되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다. 가족들도 알아야했기 때문이다. 술의 영향도 있었을테지만 모두 격노했다. 자기들도 모르게 거기 갔다는 힐책은 아무도 안했다.

둘째 아이의 제안으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를 보았다. 황정민이 살인청부업자이고 이정재는 황정민 한테 살해당한 일본 야쿠쟈 동생이니
어차피 쫒고 쫒기는 아수라장 이었지만 6발 장전의 권총에서 수십발의 총알이 발사되는 씬은 옛날 영화도 아닌데 약간 황당했다. 하지만 도심에서도 황정민이 그대로 내갈기는 기관단총 세례에 이정재 쪽이 '콱 뒈져' 쓰러지는 장면에 더 신명이 났다. 어차피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했다.

대한민국도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운명이라고 저들은 말한다.그렇지 않고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거다. 어느 극좌 문빠들은 최소 1000만 명 이상은 죽여버려야 친일파를 비롯한 적폐청산이 이루어지며 그때서야 통일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기사 문재인이 간첩이 아니고서야 지난 4년간을 뒤돌아보면 어떻게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망가뜨렸는지 설명이 안됀다. 적폐청산은 그래서 끝이 없다.

그런데 보수우파는 속수무책이다. 돈도 없고 결집력도 약하며 겁도 많다. '국민의힘'을 보면 그것들을 먼저 기관총으로 쏘아 죽이고 싶다는 울분이 난무하지만 겨우 속이라도 시원하라고 영화같은거나 보고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달래볼 뿐이다. '국민'은 애타하고 그걸 두려워하는 저것들은 별짓을 다하는데 제도권에서 함께 기를 쓰고 싸워줘야할 야당이 저 모양이니 설사 문재인이 타도된다 한들 그 다음은 뭐란 말인가.

이래저래 속터지는 하루였지만 그래도 나훈아가 쏘아 올린 포성이 아직도 장안에 가득하여 '테스형'을 흥얼거려본다. "너자신을 알라며요"

2020년 10월 4일

제발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https://youtu.be/6HWxLhoF-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