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함

백두여신 경개여고(白頭如新 傾蓋如故)

고향 길 2021. 7. 17. 13:51

백두여신 경개여고(白頭如新 傾蓋如故)

어려서부터 시작하여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사귀었어도 새롭고 낯설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가다 만나 수레 옆에서 잠깐 양산을 기울인 채 이야기를 나누고도 오랜 친구처럼 친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마음이 안 통하는 사람은 천번을 만나도 친해지지 않고 마음이 통하면 한번을 만나도 친하게 된다는 것이다.

傾蓋는 '덮개를 기울이다'는 뜻으로 蓋(덮을 개)는 비나 햇빛을 피하기 위해 수레에 설치한 덮개를 가리킨다. 옛날 자가용인 수레는 멈추면 수레가 앞으로 기울고 덮개도 따라 기울게 마련이다. 傾蓋는 그래서 '수레를 멈추다'라는 뜻도 있다.

 

이 말은 사마천의 사기 노중련(魯仲連) 추양열전(鄒陽列傳)에서 나오는데, 추양(鄒陽)은 노중련, 굴원(屈原)과 같이 인품이 깨끗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삶을 살다간 격조 있는 선비로 평가받고 있다.

사마천은 사기 노중련 추양열전의 후반부 첫머리에서 추양에 대해 기술하면서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추양은 제나라 사람이다. 그는 양(梁)나라를 떠돌면서 오나라 사람 장기부자와 회음 사람 목생의 무리들과 사귀었다. 그가 양왕에게 글을 올려 양승과 공손궤 사이에 끼어들자 양승 등이 추양을 질투하여 양 효왕에게 나쁜 말을 했다. 효왕이 노하여 추양을 법관에게 넘겨 죽이려 했다. 추양은 객지를 떠돌다가 모함받아 갇히게 되어 죽어서도 오명을 지고 갈까 두려워 옥중에서 상소문을 써서 올렸다’

 

사마천은 이어서 추양이 쓴 옥중상소문을 길게 인용하고 있는데 바로 이 상소문에서 백두여신 경개여고(白頭如新 傾蓋如故)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백발이 되도록 만나도 낯선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에서 잠깐 만나도 오랜 친구 같은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 그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諺曰 有白頭如新 傾蓋如故 何則 知與不知也)’

 

추양은 양왕이 자신의 마음을 모르니까 간신배들의 모함에 넘어가 자기를 투옥시켰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가장 설득력 있는 이 말을 찾아내어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추양의 상소문을 읽어보면 역사적인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고 있어 사마천이 열전에서 이 상소문만 길게 전재하면서 추양을 알리고 있어도 그럴 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추양은 상소문에서 고금의 많은 고사들을 인용하며 군주와 신하가 서로 진실되게 믿으면 어떤 모함에도 빠져들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설사 군주가 주위의 간신배들로 판단이 흐려졌다 하더라도 옛일들을 되살펴 모함에 빠진 선비를 잘 가려내고 억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어진 군주가 세상을 통제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데에는 도공이 물레 위에서 균형을 만들듯이 자기만의 교화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박하고 혼란한 말에 이끌리거나 뭇 사람들의 근거 없는 말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是以聖王制世禦俗 獨化於陶鈞之上 而不牽於卑亂之語 不奪於衆多之口)’

 

추양은 자신의 구명을 위해 정말 모든 지식과 경험을 다 동원하여 해박하고 풍부하게 논리를 전개하여 그 글을 읽으면 누구라도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잘 쓰고 있다.

양왕도 추양의 상소문을 읽고는 아주 감명을 받아 추양을 풀어주고 상객(上客)으로 삼아 잘 대우를 하게 되었다고 하니 상소문의 효력이 빛을 발한 것이라 하겠다.

세상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인사(人事)의 기미(幾微)를 포착하여 폐부를 찌르면서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말을 만들거나 인용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웬만한 지혜와 통찰력으로 훈련된 사람이 아니면 적절한 상황에서 적합하게 그런 말을 찾아내거나 만들어 표현하는 일이 잘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추양이 이런 말을 만들고 인용하여 자신의 뜻을 절묘하게 비유하여 상대로 하여금 금방 깨우치게 하는 실력을 갖춘 선비임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상소문에는 여러 가지 고사를 들어 비유를 많이 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하나하나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추양의 논리와 표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백두여신 경개여고(白頭如新 傾蓋如故)|작성자 별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