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 / 정 광 남 (2015-11-25)
첫 눈 정 광 남 이른 아침 하늘이 잿빛이다. 눈이 오려나? 하고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미니 기다렸다는 듯이 눈발이 날려 내 얼굴에 사뿐히 내려앉으며 인사를 한다. 어느새 일 년 만이란다.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금년 첫 귀한 손님을 맞이하였다 서설(瑞雪)이다 아마도 금년 겨울은 내게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다 이 나이에도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나는 내 고향 옛날로 돌아간다. 어머니 가슴같이 포근한 고향을 가슴으로 안아 보면서 ......
그래서 나는 이 정하 시인의 “눈 오는 날”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눈 오는 날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게 아니라/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 그래서 눈 오는 날엔/ 사람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딴 데 가있는 경우가 많다/ 눈 오는 날엔 그래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 더 많다.
커피 한잔을 들고 창가에 앉는다. 커피 향과 함께 아스라이 떠오르는 내 고향 길에 들어서면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어머니도 보고 싶고 아버지도 보고 싶다 어릴 적 같이 놀던 동무들도 보고 싶고, 내 고향 아름답던 그 모습이 마냥 그립고 보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친구도 만날 수가 없다. 부모님은 계시지 않으니 뵈울 수 없고, 떠나고 남은 친구는 어릴 적의 코 흘리고 팽이 치고 썰매 타던 동무가 아니다. 더욱이 내 고향은 현대화 물결에 여기 저기 파헤쳐져 상처투성이에 멍들어 있고 메말라 있다. 그래서 나는 고향이 더 그리운지 모른다. 눈이 오는 날이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우리 집 강아지 누렁이가 더 좋아 한 것 같다 눈이 내려 소복이 쌓인 달 밝은 밤이면 개울건너 저 멀리 초가집에 호롱불이 졸고 인기척에 놀라 꺼겅 꺼겅 짖어대는 개짓는 소리는 별 들이 수놓인 온 동리의 정막을 깬다. 아무도 걷지 않은 하얀 눈길에 내가 남긴 발자국은 코끝이 싸한 바람과 함께 내 마음을 하얗게 만들었고 소박한 꿈을 잉태했다 나의 꿈이 자리한 그곳 지금도 나는 그 추억을 먹는다. 어느새 창가에 눈이 소복이 쌓인다. 온 누리에 어두운 곳을 다 덮으려는가 보다 눈(雪)은 사람들을 포근하게 안아 주는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밖으로 내몰아 송두리 째 망가트리고 있다. 오늘도 내 손자 손녀는 첫눈이 안겨주는 아름다움을 모르는 체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또 여기저기 학원을 헤맬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자연의 신비로움과 인간의 숭고함을 잊고 살게 되었는가?
경제 발전이 가져다준 풍요 속에 현대화 산물은 눈이 오면 여기저기 길이 막히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안전사고도 많다. 그 뿐 아니라 얄팍한 현실에서 순수한 인간미마저 점점 멀어져 가고 꿈과 낭만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고향은 나의 영원한 안식처, 마음에 고향 ! 오늘따라 어머니가 떠 주시던 용수가 생각난다. 금년 겨울에는 손자 손녀 손을 잡고 겨울 여행이라도 한번 다녀와야 하겠다. 눈이 오는 날이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 ◀ ● ▶ 위 글은 정광남 작가의 2014년 계간⌜미래시학겨울 호⌟ 신인 문학상 수필부문 수상
[배경음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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