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山 鄭光男 에세이

Ending Note에 대한 短想 / 고향 길 (2015-03-04) |

고향 길 2018. 8. 25. 07:25

Ending Note에 대한 短想

     나에겐 茶禮나 忌祭祀, 葬禮文化에 대하여 아쉬워 했던 기억이 있다. 한번도 뵌적 없는 조상님 위패를 모시고, 일정한 형식과 순서에 따른 요식행위로 끝 나는 행사, 영정사진 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분의 동영상이 있다면 더더욱 좋고! 생전 그분들의 개성과 기호식품이 똑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생전의 생활패턴의 일부라도 엿볼수있는 방식으로 모시면 어떨까!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한 산악인이 였으면 정상에서 찍은 기록 사진으로 위패를 대신하고, 생전에 즐겼던 기호식품들로 상차림을 마련하고, 그 분이 애지중지 소중히 여겼던 등산장비 한 두개라도 모시고... 에베레스트 기록 동영상 있으면 錦上添花 이고!

이런 발칙?한 내 생각을 언젠가 차례를 지내고 모인 가족들 앞에서 말한적이 있다. 이구동성 나에게 돌아온 질타의 소리는 " 어쩜 그런 마적떼 같은 생각을 할수 있는냐! 였다".

 "있는 사진도 다 태워버리고 갈건데 사진은 뭔 사진". 친구 A의 말이다.

옆에있던 B가 맞장구를 친다. "그래, 자식들에 부담되게 남길 필요 없지".

과연 그럴까?

손톱만한 크기의 전자 침 하나에 族譜를 다 담을수 있는 이 엄청난 시대에 개개인의 흔적들을 깡그리 다 없애버린다?

지구상 가장 많은 참혹한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黨爭으로 무고하게 죽어가는 환경속에 생존해 왔던 역사가 빚어낸 기록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가?

하여간 우리들의 기록문화는 빈곤한 수준임에는 틀림없다.

    몇일전 친구 정광남 작가로 부터 메일이 왔다. 그 편지 내용과 첨부로 되여있던 수필을 내 블로그에 올려 놓고, 지인들에게 재 발송했다. 그 서신내용중 이런 대목이 있다.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3,000만 명을 넘어선 일본에서는 요즈음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말하는 ‘종활(終活슈카쓰)’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관련 세미나와 엔딩노트를 작성하는 것이 대 유행이라고 하는 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았다. 또 기고자(寄稿者)가 어느 지인의 장례식에 조문을 가니 병원장례식장이 아니라 다목적 홀 같은 곳 을 이용하여 장례를 치르면서 곡()하는 소리가 아니라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대중음악이 흐르고 입구에는 생전에 찍은 사진으로 조문객을 맞이하고 한쪽에는 고인이 걸어온 삶을 엿볼 수 있도록 두꺼운 사진 앨범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스님이 독경을 하는 일반적인 장례식과 너무 다르고 경건해서 물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작성한 ‘엔딩노트’ 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품의 있는 죽음을 택할 권리와 엔딩 노트를 작성하는 생활풍속도를 그려나갈 때가 되였다고 생각한다.

 비록 이웃 나라에서 지만, 내 생각과 같은 생각으로 장례를 치렀다는 뉴스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생전에 작성해 두는 엔딩 노트(Ending Note)의 지혜는 우리가 수입해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닐까

J. Massenet - Meditation from "Thais", violin Lucia Luque - piano Mauro Berto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