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 / 정 광 남 (2015-03-02)
한 동안 격조 하였습니다
첨부하는 글은 작년에 써둔 글인데 아시는대로 며칠전 국무총리를 지내신 JP 김종필씨가 부인이신 박영옥 여사를 보내시는 모습이 너무도 숭고하고 아름다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남남끼리 연이 닿아 살을대고 살아 오면서 더하고 덜함의 차이는 있었을 지언정 그이나 우리들은 즐겁고 좋았던 일 보다는 힘들고 괴로웠던 일들이 많았을 삶을 살아 왔습니다. 이제 미운정 고운정 다 접어 영 - 영 다시는 볼수없는 먼 길을 떠나 보내는 그이의 모습은 아름다움의 이면에 가슴을 메이는 슮픔이 앞을 가렸을 것입니다.
그 목이 메이는 아픔은 자식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의 몫으로 만 남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것이 그이의 일만이 아니라 내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얼마 인지는 모르나 내게 주어진 나머지의 시간들, 또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앞에 다가올 이별을 부부간에 누구가 먼저 일지는 모르나 어떻게 보내고 맞이하여야 할것인가를 생각하게 하기에 옛글을 찿아 봅니다.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 - 7 -
정 광 남
나는 우연한 기회에 “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 ”는 나카무라 진이치의 표제의 책을 읽고 많은 충격과 고민에 쌓여있다 평소 죽음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피상적으로만 생각한 것이 어느새 내 앞에 다가와 있음에 놀랐고 이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다는 것에 다시 놀라는 것이다 저자는 평생을 환자와 함께 생활해온 의사로서, 요양병원의 소장으로서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생로병사의 현장에서 생생한 경험을 통하여 전해주는 진솔한 메시지는 공감(共感) 그 자체였으며 사람을 숙연하게 까지 한다. 그는 또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 주며 독자로부터 최소한의 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책의 내용을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해 준다.
첫째. 죽음이란 자연의 섭리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생물은 때가되면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돌아가듯이 인간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 다는 것이다 죽음은 원래 편안하고 조용한 것으로 가장 행복한 죽음은 명(命)을 다하여 그 어떤 의료 간섭 없이 죽는 자연사를 지적한다.
둘째. 현대의학의 어떠한 의료 행위도 생로병사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 죽음을 거역하거나 피해갈수 없는 일임을 강조하면서 지나친 의료행위는 고통만 주어질 뿐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지적하고, 의료에 필요이상으로 의존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셋째. 자연에 순응하여 죽음을 준비하라고 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자기 자신만의 시야를 갖고 죽음에 대한 선택을 하고 준비하라고 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선택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특권이며 권리이다. 선택결과에 따라 아름다운 유산이 될 수도 있고 비참한 죽음으로 전락 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면서 이제 부터라도 자신의 삶과 죽음을 존엄하게 하기 위하여 죽음을 위한 영정사진, 유언장, 사전의료의향서등 구체적인 사항을 열거해서 우선순위를 정하여 실행에 옮기라고 한 다.
넷째.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노화를 되돌리는 환상을 버리라고 한 다. 나이 들어 인체가 노화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므로 마음으로 살지 말고 몸으로 살기바라며 환상에 젖어 없는 병을 만들지 말고 자연에 순응하여 병과 친구삼아 동행하면서 늙어가는 모습과 죽어가는 숭고한 모습을 후손에게 유산으로 남겨 주라고 한다. 끝으로 치매 등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질 것을 대비해 미리 죽음을 맞이하는 엔딩노트(ending_note)를 만들어 한 삶의 유종의 미를 거두라고 하면서 끝을 맺는다.
“나는 과연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나는 이 책을 몇 번을 반복해 읽으면서 옛날 분들이 참 현명하고 지혜로웠다는 생각과 실제 삶과 죽음의 교착 점에서의 선택은 본인이 아니고는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일임을 재확인하고 그간 잊고 지낸 일을 되새겨 최소한 사전의료의향서와 몇 가지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작성해두 고자 한다.
내 어릴 적일이다. 시골 동리에 연세가 많은 노인이 계신 댁에서는 가묘(假墓)를 만들어 놓고 수시로 가서 묘를 가꾸고 당신이 들어갈 관과 수의를 만들어 놓고 좋아 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떠나 천수를 다하고 이승을 떠나는 것을 온 가족이 축복으로 맞이하는 자세였으며 지금처럼 병원으로가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 아니라 기력이 쇠하여 죽음에 다다른듯 하면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은 물론 일가친척들까지 불러 임종을 맞이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 얼마나 숭고하고 존엄스러운 죽음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포괄적 의미가 담긴 자연사가 아닌가 생각 한다. 또 사람이 살아가면서 병원에 문병을 한두 번 안 가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개중에는 생명이 꺼져 가는 상태에서 위에 구멍을 뚫고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식물인간 상태에서 산소 호흡기 등 인공적인 방법으로 생명만을 연장하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과연 이들에게 건강을 회복하거나 삶의 질을 개선 할 수 있었는가 기적이 아니고는 말할 수 없는 고통만을 안겨 준채로 종래는 비참한 죽음을 맞게 하였으며 간혹 가족 간에 불화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솔직히 이러한 행위는 과연 누구를 위해서 또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하였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내 주변에 중환자가 있어 보호자겸 간병인 역할을 해야 했던 일이 있었다. 다행이 환자 본인 스스로가 병고를 이겨 내고자하는 강인한 의지가 있어 그 어려운 투병 생활을 견디어 내고 지금은 건강한 몸으로 생활하고 있으나 당시 몇 번씩이나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둔 보호자의 역할이란 고작 의료진에게 매달리는 일밖에는 없었고 코가 꾀인 송아지처럼 의사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병원이나 의사는 의료윤리의 기본원칙상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죽음을 저지하거나 지연시켜야하는 사명(使命)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태가 악화되어 중대한 선택을 요구 받았다면 과연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하였을까 생각만하여도 끔직한 일이었기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더욱이 부모의 죽음을 맞이하는 자식의 입장이라면 더더욱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로 간과해 넘어 갈일이 아니며, 후일 내게 다가올 죽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여야 할 일이다.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3,000만 명을 넘어선 일본에서는 요즈음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말하는 ‘종활(終活슈카쓰)’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관련 세미나와 엔딩노트를 작성하는 것이 대 유행이라고 하는 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았다. 또 기고자(寄稿者)가 어느 지인의 장례식에 조문을 가니 병원장례식장이 아니라 다목적 홀 같은 곳 을 이용하여 장례를 치르면서 곡(哭)하는 소리가 아니라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대중음악이 흐르고 입구에는 생전에 찍은 사진으로 조문객을 맞이하고 한쪽에는 고인이 걸어온 삶을 엿볼 수 있도록 두꺼운 사진 앨범이 놓여 있었다고 한 다. 스님이 독경을 하는 일반적인 장례식과 너무 다르고 경건해서 물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작성한 ‘엔딩노트’ 에 따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 다. 이 사례를 어떻게 받아드릴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우리나라의 장례문화와 비교하여 생각해 볼 일이다.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은 삶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된 다 는 이야기를 다시 되뇌어 보며 내가 작성하는 ‘엔딩노트’를 디자인 해보고자 한다. 2014. 4. 27 the Peak from Christian Mülhauser on Vime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