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山 鄭光男 에세이

정광남으로 부터 날아 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 / 허 규 철". (2015-04-11)

고향 길 2018. 8. 25. 07:40

 

      동창 정광남으로 부터 자기가 읽은 독후감과 함께 메일이 왔다. 따듯한 온기가 온 몸으로 번지는 글이다. 혼자만 읽고 두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서 blog에 포스팅하고 메일로 발송한다.

        

보내온 소개 글.

 

양지바른 돌담밑에 인고의 설한을 헤집고 나온 새싹을 신기하게 바라본것이 어제인가 하였다만 어느새 잎이나고 꽃이피어  돌아볼 여가도 없이 시샘의 바람은 낙화라는 이름으로 눈길을 만듭니다.

내 마음에 언젠가는 내 어릴적 시골에서 자란  글을 한편 써야 겠다고 마음에 하나 둘 자료를 더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며칠전 우연히 읽은 글에 아-! 이거 내  가쓰고 싶은 글인데 하고...

꼭 도둑 맞은 기분 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시골에서 자란 나는 아 ㅡ 참 잘 쓴 글이구나 하는 생각에 또 읽고 또 읽고 몇번을 읽을수록 어릴적의 추억을 더듬어 주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자라면서 꿈을 키우고  또 추억을 쌓아 가는 것인데  너무나 정서가 메말라 안타까은 마음입니다.

혼자 읽기가 아까운 마음이 들어 타이핑을 해서  내가 좋아하는 두 仁兄에게 보내 드립니다.

시간 나실때 천천히 읽어 보시오.  정광남으로 부터  2015-04-11

 

 

 내가 좋아하는 것들

                                                                                                                허 규 철

 

       가을비 내린 차창에 수북이 떨어진 붉은 단풍잎, 발밑에 바스락 부서지는 낙엽을 나는 좋아한다. 무성했던 잎을 다 떨구어 버리고 의연하게 찬바람을 맞는 겨울나무를 좋아한다. 위선의 잎으로 자신을 감추고 그 속에 깃든 온갖 벌레 같은 더러운 생각들을 무성하게 키워왔던 여름을 밀어내고 앙상한 가지를 숨김없이 드러낸 완당의 세한도 같은 나목을 나는 사랑한다.

오월의 신록 그 눈부신 생명의 향연을 사랑한다. 실개천에 늘어진 수양버들, 산들 한 봄바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성과 연두 빛 꿈을 좋아한다. 까치집을 매달고 개울가에 서있는 미루나무는 아련한 향수, 내 소년의 뜰을 추억하게 해서 좋다.

연약한 꽃잎들이 서로 껴안고 감싸주며 의연히 동장군을 이겨낸 봄꽃의 결기를 사랑한다. 매화는 매무새만 고운 것이 아니라 깔끔한 청량이 일품이다. 아직도 응달엔 눈이 녹지 않았는데 소지燒紙보다 더 앓고 가녀린 꽃잎에다 어찌 일품 향까지 품고서 피어난단 말인가. 인생의 겨울을 맞이했을 때 조용히 인내하며 이겨내지 못하고 고민하며 몸부림쳤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축제속의 화려함보다 산속에서 하늘하늘 피어있는 산 벗을 좋아한다. 파스텔화같이 아련한 빛으로 핀 수즙은 모습이 화려한 원색으로 성장한 여인보다 좋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이 오면 돌아앉던 고향 빨래터의 여인처럼 숨김이 미학을 사랑한다. 산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긴 나를 일깨우는 이름 모를 풀꽃 향기를 좋아한다. 하얗게 피었다가 노랗게 지는 인동꽃, 초록이 자색으로 멍들도록 아픈 겨울을 이겨내고 버선코 같은 곡선을 그리며 피어난 꽃의 생김새며 달콤한 향기까지 그 고혹적인 모습을 나는 사랑한다.

노을이 고운 저녁, 건너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저녁연기와 돌담위에 핀 새하얀 박꽃과 달덩이처럼 둥글게 영근 박덩이를 ,훤칠하게 자란 수숫대와 흑자색 겉껍질이 자란 수수이삭을 좋아한다. 한여름 밤 마당에 멍석을 펴고 누워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과 유난히도 또렷한 견우성과 직녀성 사이를 흐르는 은하수, 고적한 겨울밤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올빼미 소리와 문풍지를 울리는 바람소리를 좋아한다. 한낮에 홰치며 울어대는 늠름한 수탉의 울음소리, 풀을 뜯다말고 길게 우는 암소의 울음소리, 마구간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소 방울소리를 나는 모두 사랑한다. 문고리가 쩍쩍 달라붙도록 추운 겨울 밤 ,추녀 끝을 뒤지며 참새를 잡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꼴을 많이 뜯어 넓적해진 소잔등에 올라타 돌아오는 저녁 엄마가 만드신 칼국수 맛을 나는 잊지 못한다. 이른 봄에 맛보는 쑥국, 달래와 냉이를 넣고 뚝배기에 자글자글 끓인 된장찌개를 나는 유난히 즐긴다. 가죽나물과 머위 쌈, 방아를 넣은 빈대떡의 향내를 잊을 없다. 시리도록 질 푸른 저수지 뚝 길에 가득 피웠던 구절초와, 억새와 갈대를 사랑한다. 안개 낀 가을 아침 갓 내린 에스프레소 향기, 서리 내린 들길을 거닐며 꿈과 사랑과 삶을 생각했던 청년 교사시절 그 풋풋했던 날들을 기억하

기를 좋아한다. 오월 이른 아침 참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꾀꼬리 노래를 좋아한다. 마리아 칼라스가 열창하는 아리아 같이 청아하고 명징明澄한 꾀꼬리 노래는 어수선한 머리와 복잡한 가슴을 씻어 내려주는 최고의 청량제다. 담장에 핀 화려한 장미꽃을 좋아하지만 산자락이나 개울가에 가득 피어 그 옛날 누나가 발랐던 코티 분 향기를 풍기는 찔레꽃을 더 좋아한다.

이른 봄 노란 웃음으로 반겨주는 대문가에의 수선화와 초록과 보랏빛의 대비로 여름을 싱그럽게 만드는 붓꽃을 사랑한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도 좋고 끊어질듯 살지다가 포르테시모로 가슴을 무너지게 하는 파가니니를 사랑한다.

니니로소의 밤하늘의 트럼펫을 들으면 아련한 향수의 배를 타고 잔잔한 호수 위를 노저어가는 몽환에 잠긴다. 어미이징 그레이스를 배우고 트럼펫을 처음 연주했을 때 그 황홀한 기분을 잊지 못한다. 지금도 반짝이는 황금빛 트럼펫 연주를 들으면 가슴이 뛴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과 G선상의 아리아와 베토벤의 전원을 좋아한다. 볼륨을 마음껏 올려놓고 헨델의 메시아를 들으며 난 행복해 한다. 클래식 창법으로 부르는 샹송풍의 가을 편지를 들으며 창 너머 낙엽 쌓인 산길을 바라보는 것은 만추에 즐기는 나의 은밀한 로망이다. 봄비처럼 촉촉한 임국희의 음성으로 목마와 숙녀를 들으면 박인환의 시가 더욱 돋보인다. 월리암 워즈워즈의 무지개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외우며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맑은 마음으로 먹을 갈아 예리한 정으로 혼신을 다해 쏟아 글을 새기는 석공같이 붓 끝에 기를 모아 칠언연구七言聯句와 선현들의 가언嘉言 쓰기를 즐긴다.

 

향수-임태경,조영남,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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