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枯死)된 분재(盆栽)를 보면서 / 은산 정광남 2017-01-11
재호 인형! 새해를 맞으시어 더욱 건강하시고 가내 편안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제야에 종소리를 들은제가 어제 같은데 1월도 어느새 중순에 접어 듭니다 세월을 따라가는 것인지 밀려가는 것인지 이제는 세월의 감각마저 잊은제 오래 되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세상사가 하도 혼란 스러워 늙은이의 마음은 내일이 불안 스럽기까지 합니다 헐벗고 굶주려 어떻게 이룬 나라인데 어쩌다 이리 되었는지? 걱정이 앞섭니다 지난 세월 돌이켜 보면 다 꿈같은 일이고 남은 것이라 고는 여기저기 삐걱대는 소리에 주름진 얼굴에 마누라 앓는 소리 뿐입니다 세월도 변해서 덩그런히 큰집에 너나 할것없이 마누라와 단 둘이 하는 일 이라고는 싸웠다 웃었다 웃었다 싸웠다 왜? 싸웠는지도 모르고 싸우고 마누라에게 구박 받는 것이 일이고... 그래도 날 위해 주는 사람은 마누라 밖에 더있나요 우리 세대는 참 바보같이 살았네요 앞만 보고 살았지요 丁酉년 새해를 맞이하여 집사람을 생각한 雜文을 하나 보내 드립니다 仁兄 ! 건강하시오 ㅡ <> ㅡ 하루 속히 대한민국의 안정을 기원합니다 고사(枯死)된 분재(盆栽)를 보면서 은산 정광남
나는 옥탑(屋塔)베란다에 몇 구루의 분재를 가꾸고 있었다. 그중에 느티나무 분재는 16년 전 내가 회사를 퇴임하고 나서 마음을 정리하고자 등산을 하는 길에 큰 나무 밑에 가려저 있는 어린 싹을 채취하여 이룬 분재로 나의 퇴직 기간과 같은 수령(樹齡)으로 이제는 제법 고목이 된 양 나무껍질이 트여 벌어지고 분재로서 틀을 잡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한눈에 보여주는 분재다. 잔설(殘雪)에 잎눈을 틔워 새봄이 오는것을 알려 주는가 하면, 새싹이 돋아나 시시각각(時時刻刻) 날이 다르게 변화하는 새생명의 신비로움과, 새싹이 자라 청록의 계절에 들어서면 무한대의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젊음의 패기를, 젊은이의 기개로 활력이 넘치는 한여름의 아름다움을 한것 구가(謳歌)한 뒤에 형형색색의 오색을 띠워 가을 단풍의 진수(珍秀)를 보여 주고, 가을을 지나 겨울에 들어서면 나무 잎을 하나 둘 떨구워 끝내는 벌거벗은 나목(裸木)으로 자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망중한(忙中閑)에 분재를 드려다 보고 있노라면 가까이는 사계절의 흐름과 음양의 이치를, 크게 멀리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우리의 삶이 그대로 다 담아저 있는것을 보게 된다. 생김새 또한 잘생겨서 관상목으로도 제 몫을 다하고 있어 나는 유독 그 분재에 정(情)을 주고 아끼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겨울 예기치 못한일로 경황이 없어 한달여 나는 분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언듯 분재 생각이나서 올라가 보니 이게 왼일인가? 느티나무 분재를 비롯하여 장미, 소나무등 모든 분재가 고사(枯死) 직전에 있는 것이다. 그중에도 하필이면 내가 아끼는 느티나무 분재와 장미나무 분재가 더욱 심하다. 물과 영양수액를 주며 온갓 정성을 다드려 소생(蘇生)하기를 고대하였으나 봄날이 가고 초여름이 되도록 소식이 없다. 살리기를 포기한 어느날 그래도 미련이 남아 살피니 장미나무 밑둥에서 싹이 트는것이 아닌가? 뛸듯이 기쁜마음에 시간 날때마다 올라가 보니 여기 저기 하나 둘 싹이나고 잎이 자라면서 말라 비틀어 젖던 나무가지에도 물이 조금씩 조금씩 오르더니 여름이 다 가도록 오랜 시간을 두고 나무 끝자락 까지 잎을 피워 내어 이제는 한 송이의 꽃까지 피워 한달여 피어 있다. 그러나 살아 나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던 느띠나무 분재는 영영 고사하고 말아 나와의 인연(因緣)은 여기서 끝이 나고 말았다. 나는 이 고사된 분재와 소생한 장미 분재를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긴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인연을 맺음에는 신중해야 할것이며, 맺은 연(緣)에 대하여는 책임을 저야 할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찮은 나무 싹 이었지만 있는 그대로 놓아 두었더라면 지금쯤은 잘 자라서 거목(巨木)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생명을 유지 할수있는 식물을 방치하여 고사 시켰다는 것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일이 아닌가 한다. 또한 소생한 장미분재의 생명력(生命力)이다. 비록 말을 못하는 식물이지만 오랜 시간을 소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었을가? 그뿐 아니라 아직도 성치 않은 몸으로 제 몫을 다하기 위해 꽃을 피우는 모습에는 안쓰러운 마음마저 든다. 분재가 피고 지고 말라죽고 다시 살아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삶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간 귀한것을 귀한줄 모르고 고마운것을 고마운줄도 모르고 일상(日常)으로 살아 온것이 너무나 많다. 보다더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어 주지를 못하였을가 후회가 많이 난다. 이제 나도 언젠가는 거추장 스러운 옷을 훌훌 벗어 버리 고 나목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며칠전 서울대 공원 산책길에 허리굽은 노인네 부부가 서로 의지해 손을 잡고 걸어 가는 모습이 불현듯 생각이 난다. 그 노(老) 부부는 무순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 가고 있었을가? 이제라도 주어진 삶에 자그마한 것이라도 귀하게 여기고 고마움을 전하고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아 보자고 다짐을 해본다. 설한(雪寒)의 추위에도 따스한 봄볓이 스며있는 것을 보면서 ...... 2017. 1. 9일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