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

동방삭

고향 길 2018. 8. 26. 06:56

얓태

동방삭(BC 154~BC 93)은 한나라 무제(漢武帝) 때 사람으로 대단히 박학다식하고 , 유창한 언변과 재치로 무제의 총애를 받았다. 문장에도 뛰어났으나 풍자와 해학으로 유명하여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날 황궁에 처음 보는 파랑새[靑鳥]가 날아들었는데 아무도 그 새가 무슨 새인지 알지 못했다. 무제가 동방삭을 불러 물어보니 그는 "이것은 서왕모(西王母 )가 이곳에 온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함입니다."라고 했는데 과연 얼마후 서왕모가 곤륜산에서 재배한 반도복숭아 10개를 가지고 무제를 예방했다.

 

반도(蟠桃, 天桃)는 3천년만에 한번씩 열리는데 그걸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귀한 과일이었다. 반도가 열리면 서왕모는 신선들을 초대해서 반도연(蟠桃宴)을  여는데, 여기에 초청되는 것은 신선들에게 큰 영예였다. 손오공이 그 연회에 초대받지 못하자 잔치자리에 쳐들어가 행패를 부린 적이 있다.

 

동방삭은 무제로부터 서왕모를 영접하라는 명을 받고는 기회를 틈타 반도 3개를  슬쩍 빼돌려 먹어치우고, 황제에게는 7개만 바쳤다. 그 때문에 장수했다 하여 ' 삼천갑자(三千甲子) 동방삭'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매우 오래 산 사람'의  비유로 쓰인다.

 

동방삭 설화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민담 특유의 코믹한 요소들이 배합되어 한층 재미있게 발전했다.

 

동방삭은 창해(우리나라) 사람이다. 근본을 잊지 않기 위해 이름을 동방(東方) 으로 고치고 중국에 건너가 한 무제의 신하가 되어 이름을 크게 떨쳤다.

 

원래 저승의 수명부(壽命簿)에는 동방삭의 수명이 30세로 적혀 있었다. 때가 되자 동자판관(童子判官)이 살생부(殺生簿)와 수명부를 대조해 보고, 저승차사에게 동방삭의 이름과 수명이 적힌 적패지(赤牌旨)를 주어 동방삭을 데려오게 했다.

 

저승차사가 동방삭의 집으로 가보니 그는 집에 안 들어온지 여러 달이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동방삭은 그 무렵 랑(郎)이라는 말직을 맡아 황궁안에서 상직(常直)하고 있었는데. 저승차사가 찾아와 동방삭 본인임을 확인하고 체포영장인 적패지를 내밀자 동방삭은 차사가 잠간 다른 데를 보는 사이에 몰래 수명 란의 三十에 한 획을 그어 三千으로 고치고는 되레 큰소리로 차사를 나무랐다. 차사는 잘못을 빌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러났다.

 

한참 후 다른 차사가 찾아와 三十이라고 적힌 적패지를 내밀고 저승으로 데려가려고 하자 동방삭은 지난 번에 분명히 三千이었 음을 먼저의 차사와 같이 확인했는데 무슨 개소리냐며 길길이 날뛰었다. 말로는 도저히 동방삭을 당할 수 없음을 안 차사는 일단 물러갔다.

 

동방삭은 이번에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 암자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암자로  향하는 길목의 큰 나무 밑에 옷과 돈, 신발 그리고 먹음직한 식탁을 차려 놓았다.

 

저승차사는 상관인 동자판관을 모시고 먼길을 헤메며 찾아왔기에 신발은 닳고 옷은 헤어졌고 무엇보다 몹시 허기졌다. 그런 차에 인적 없는 곳에 주인 없는 식탁이 차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냉큼 달려들어 배불리 먹고 옷과 돈, 신발도 챙겼 다.

 

그러나 아뿔사~! 그것이 뇌물이었음을 동방삭을 만난 다음에야 알았다. 거하게  접대를 받고서도 동방삭을 끌고갔다가는 이 교활한 작자가 판관장인 최판관(催 辦官, 崔判官)에게 무슨 말을 고할지 알 수 없었다. 뇌물인지 몰랐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잘못했다간 나찰로 강등되어 고생을 직사게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차라리 최판관에게 이실직고하고 선처를 바라는게 나을듯 싶었다.  동방삭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그 다음 일이었다.

 

보고를 받은 최판관은 골치를 싸매지 않을 수 없었다. 자칫하면 저승 최대의 스캔들로 번져 염라대왕(閻王)으로부터 집단으로 엄벌을 받을 일이 아닌가. 동방삭이란 놈이 괘씸하기 이를데 없지만 따지고 보면 저승에서도 묵인 내지는 공모 한 셈이었다.

 

첫번째 차사 놈은 三十을 三千으로 고친 것을 묵인해주었고, 반드시 잡아오겠다고 큰소리친 두번째 차사 놈과 판관 녀석은 뇌물을 받아먹고는 그냥 돌아왔으니  공범이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때 마침 동방삭이 서왕모의 반도 복숭아를 훔쳐먹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것도 세 개나!

최판관은 무릎을 쳤다. 즉시 염왕에게 달려가 일의 전후를 아뢰고, 의논한 끝에  서왕모가 동방삭을 잡아 저승으로 처벌을 의뢰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서왕모는 숨어 있는 동방삭을 금방 찾아냈다. 정면돌파하기로 한 동방삭이 물었다.

"저를 잡아가서 어쩌실려고요?"

"당연히 저승에 보내 엄벌해 달라고 할거다."

"살아 있는 인간이 저승에 가면 죽는다는 것은 알고 계십니까?"

"당연한 걸 왜 묻느냐?"

"제가 불로장생한다는 반도를 세 개나 먹었는데 금방 죽어버리면 서왕모님이 거짖말을 했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엉? 듣고보니 그랬다.

서왕모는 고민했지만 요 고얀 놈을 당장 잡아갈 순 없었다. 할 수 없이 동방삭의 의견대로 그의 수명을 3천년으로 늘려주었다.

....

 

3천년이 흐르는 동안 동방삭의 지능과 지혜는 엄청나게 높아졌고, 신선 뺨치는 도술마저 익혔다. 저승에서 다시 차사를 보내 데려가려 했지만 그때마다 기민한  임기응변, 반박할 수 없는 논리, 기상천외한 술수로 빠져나갔다.

 

수명이 다한 인간 하나를 데려오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저승의 간부들은 연일 염왕의 질타를 받고 똥줄이 탔다. 수많은 의논 끝에 염왕은 마지막으로 차사를 보내보고 이번에도 실패하면 창피를 무릅쓰고 옥황상제에게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이번에 차사대장으로 승진된 강림차사가 임명되었지만 그가 성공하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강림은 일직차사와 월직차사를 데리고 동방삭을 잡으러 저승을 나왔지만 어떻게 잡아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동방삭은 고향으로 돌아와 신선처럼 유유자적하며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있어 행적조차 알 수 없었다.

 

강림은 동방삭이 스스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그가 자주 나타나는 경기도의 어느 개천에서 숯을 씻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의아해서 물으면 숯을 하얗게 만들려고 한다고 하자 곧 소문이 퍼졌다.

 

동방삭도 어떤 미친 사람들이 냇물에 숯을 빨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한참 웃다가 호기심이 동해서 그곳을 찾아갔다. 새까만 냇물이 흐르고 있는 상류에서는 과연 어떤 사람이 숯을 씻고 있는 것이었다.

"숯을 왜 빨고 있소?"

동방삭이 묻자 그 사람이 대답했다.

"숯이 너무 까매서 하얗게 만들려고 빠는 겁니다."

동방삭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껄껄 웃고는 돌아서면서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저런 황당한 얘기는 처음 듣네."라고 중얼거렸다.  순간 "저놈이 동방삭이다. 잡아라" 하는 외침과 함께 세 차사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동방삭을 잡았다.

 

삼천년을 넘게 살아온 동방삭은 강림차사의 간단한 트릭에 넘어가 저승으로 압송되었다. (삼천갑자는 18만년이 아니라 3천년이다. 중국식 과장법이다)

 

그의 재주라면 저승의 7단계 재판을 무난히 넘기고 인간으로 환생하여 지금 이 땅 어디에선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不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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