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사스 3국

제11일-제2부 -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관 [2011-06-28]

고향 길 2018. 8. 20. 13:51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진실

아르메니아 민족은 301년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고, 주위의 국가들이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도 개종을 거부해 근방에는 아르메니아 민족만이 기독교 민족으로 남았다. 이 때문에 기회만 생기면 아르메니아를 이슬람 국가로 개종하기위한 이슬람 제국들의 침략이 이어졋다. 15세기부터 오토만 제국이 중동과 발칸 전 지역을 정복하면서 아르메니아도 오토만 제국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다. 1차 대전이 벌어지기 전 오토만 제국에는 약 300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살고 있었다. 1914 1차 대전이 발발한 틈을 타 아르메니아 인들은 오토만 터키 통치자들의 압제에 반발 봉기했으며, 러시아가 터키를 침공하자 러시아군 편에 서게되였다. 이로 인한 엄청난 비극이 발생했다. 격분한 오토만 제국은 1915 4월부터 자국내의 아르메니아 인들을 조직적이고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당시 터키 정부는 아르메니아 남자들을 학살하기 위해 18세 이상 50살 이하의 아르메니아 남자들을 모두 군대로 소집했다. 강제징집된 아르메니아 남자들은 터키 군에서 훈련을 받다 나중에는 모두 무장해제된 뒤 50명에서 100명 단위의 그룹으로 나뉘어 다리 걸설과 도로공사 현장에 동원되었다. 얼마 뒤 이들은 모두 집단적으로 공사장에서 터키군에게 학살 되었거나 굶주림과 극심한 노동으로 죽었다. 이런식으로 수십만명이 죽었다. 남아 있던 어린이들과 부녀자들, 노인들은 모두 사막으로 강제 추방되어 처참하게 굶어 죽었다. 한 예로 35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을 시리아의 사막으로 추방했는데 시리아에 도착 했을 때는 단지 35명만이 살아남았다. 이때의 대 학살로 150~300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처참하게 학살당했다. 아르메니아 인구중 거의 2/3 에 해당하는 인구가 이런식으로 죽임을 당했다. 이때의 대학살로 전세계로 흩어지게 되어 러시아에 200만명, 미국에 100만명을 비롯해 107개국에 모두 800만명~1,000만명의 디아스포라[Diaspora] 아르메니아인들이 살고있는  민족이 되였다.


디아스포라[Diaspora] [위키 백과사전]


디아스포라(그리스어: διασπορ?[*])란 특정 인종(ethnic) 집단이 기존에 살던 땅을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으로)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한자어로는 파종(播種) 또는 이산(離散)이라고도 한다. 유목과는 다르며, 난민 집단 형성과는 관련되어 있다. 난민들은 새로운 땅에 계속 정착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 디아스포라란 낱말은 이와 달리 본토를 떠나 항구적으로 나라 밖에 자리잡은 집단에만 쓴다.


디아스포라 문화는 원주지역 사람들의 문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여기에는 문화나 전통, 혹은 서로 떨어진 원집단과 디아스포라 집단 사이의 다른 차이점에 따라 차이가 있다. 디아스포라 집단에서 문화적 결속은 흔히 이들 집단이 언어 변화에 대해 집단적으로 저항한다거나 고유의 종교 의식을 계속 유지하는 등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흔히 유대인을 예로 들수 있다.


아르메니아인 들에게 우리들의 백두산과 같은, 지금은 터키의 영토가 되여 갈수가 없는 聖山 " 아라랏트 산"을 바로 볼수있는곳에  아라라트 산을 형상화한 추도탑과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다.













일본의 압제, 징집과 학살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그 감회가 남다를수 밖에 없다.

스쿨 버스로 보이는데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하에 버스 위에 가스통을 달고 다닌다.무사하기를

우리 일행이 점심식사을 했던 식당 모습이다. Afrikyan Pandok Restaurant.

버섯 수프.

일행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독점했던 비빔밥.


찐 양배추 잎으로 쌓은 음식인데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찐 연꽃잎인가 무슨 잎으로 음식을 마랐다. 왠지 인기는 양배추쪽으로!

아르메니아 공항

왕복을 다 러시아 국적기을 이용했는데 모두 새 비행기로 교체해 13 여년전 북부 유럽 여행당시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틀 정도다. 좌석마닥 미니 TV세트가 있어 마음대로 영화와 음악을 선택해 볼수가 있었다. 아쉬운 점은 이용객 대부분이 한국인 들인데 기내 아나운서는 러시아 여인이 엉터리 한국어로 말해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수가 없다. 최대 고객인 한국인들에게 대한 기본적 예의도 없는 국적기다.

 

     12일간의 코카서스 3국의 길고도 짧은 여정은 이로서 막을 내렸다. 어찌 감회가 없을수 있겠는가 ! 그러나 좀더 시간이 흘러 모든 기억들이 나름대로의 각각의 색을 띠고 다시 각인될때 까지 숙성시간을 더 주기로 했다.

아래 클릭!


https://youtu.be/ciRVyHoT3kk

Arsen Petrosov (Armenia) Yerev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