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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월회 - 목포 영란횟집을 찾어가다! [2007-07-08]

고향 길 2018. 9. 14. 14:35

기차역 대합실엔 뭔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하는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가고 오고,맞고 보내는

바쁜듯 지친 모습들, 떠나는 사람들은 마음이 바쁘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장거리 여행에 지친듯 보이고,

눈에 띠는 애처로운 아가씨 눈엔 물기가 흐르고...

70 고희를 접어든 노짱들이라고 어이 이런 분위기에서 버서날수가 있겠는가 ! 명멸하는 열차시간표엔 우리가 타야할 목포행 무궁화호 13:23분이 마음을 재촉 한다. 여름의 보양식,맛의 으뜸으로 치는 민어를 찾어 목포로 떠나는 날이다. 한명의 기권자도 없이 하나로 뭉쳐 밀린 정담으로 6시간을 열차위에서 보내려고 일부러 잡은 용산발 목포행 13:23분 열차다. 하나 둘 대합실로 들어서고 있다. 1박2일 예정으로 먹거리 사냥,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민어회 사냥을 나서리고 한건 1개월전, 두월회 모임에서 결정이 났었다. 그땐 100% 였었는데, 강홍식 회원이 피치못할 사정으로 이번 모임에 참석치 못하게 되였다. 모든 계획과 준비는 먹거리 도사 김종대 회원이 도맡어 했고,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만 하면 되였다.

 

 

수원역 대합실

1시23분발 목포행 무궁화호를 타야되다보니 점심식사는 간단히 허기를 면하는 수준으로 다 함께 모여서 하기로 했다. 식권을 사기위해 줄을 서고 있는 일행들!

 

플래트 홈에서  

목포행 열차 - 1

쌍쌍히 짝지어 좌석따라 자리들을 잡았으니, 이제 할일은 불문가지라, 김종대 회원이 마련해온 안주 넘어로 박카스 주신과 세계평화를,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논할 일만 남었다.

교회에서 중책을 맏고 있는 구 선생은 간신히 시간에 맞춰 역에 도착하다보니 점심식사도 하질못해 열나게 김밥을 들고게신다.무척 허기지셨든 모양이유 ~

기념 사진부터 한장 남기고 보자 !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속으로, 주고 받는 정겨운 소주잔에, 시간의 흐름이 멈춘듯했으나 어느듯 종착역 목포에 도착하였다.술도 못하는 김만수 회장, 고맙게도 쇼핑 백에 술을 담어 수원서 부터 들고 다닌다. Thank you so much

사업관계상 혼자서 늦게 KTX 로 목포에 도착하여 참여키로한 회원이 있기도 하고, 아직 저녁식사 하기에는 좀 이른듯해 먼저 첵크 인 부터하고 해안길 따라 산책을 하기로했다.

 

 

 

여기 저기 기웃 기웃

여기 저기 기웃 기웃-2

여기 저기 기웃 기웃-3

여기 저기 기웃 기웃-4

지나가던 친구를 강제로 잡아 해산물 시장을 배경으로 한장 잡았다. 늙은 모습 보이기 싫다고 사진찍기를 싫어들 한다.고맙수다.박 대감 ! 모델료는 없수다 !

삼각지 로타리? 이리갈까? 저리갈까? 의논이 분분 !

 

 

 

여름철 먹거리 1위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영란횟집과 연을 맺은지도 어언 5~6년이된듯하다. 금년엔 14명이 집단으로 방문하게 되였다.

 

입구에 들어서며 둘러보니 주방에서 민어회를 뜨고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한장 찰칶 !

예약된 2층으로 올라가 자리들을 잡고 그때를 기다리고들 있다.

 

 

이집 민어 맛의 비결은 막걸리를 삭혀 만든 식초와 참기름과 깨, 생강을 넣어 직접 만든 된장양념에 있다

 

 보기만 해도 입맛이 확 땡긴다. 요놈을 찾어 천리길 마다않고, 6시간을 투자해 찾어오질 않었던가 ! 일행중 누군가 이렇게 명언을 날렸다. " 이거 미친놈들 아니여~ 민어회 먹으러 목포까지 오다니 !". 맞고요 ! 맞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통한다 !

역시 영란집 민어회 맛은 일품이다. 6시간여의 장거리 열차여행, 다정한 친구들과 주고 받은 前酒가 있어 이미 기분은 업된상태 ! 쐬주를 안주 삼아 민어회를 먹었으니 그 맛이 어이 일품이 아니겠는가 ! 표정들을 보아하니 붉으스레한 용안?에 흡족한 미소가 넘쳐나고들 있다.

강제로 나란히 세우고 한 장!

참 먹기에 몰두하다 보니 이집의 명품 매운탕 산진도 찍지 못하고, KTX 로 늦게도착한 이장춘 박사 사진 찍는것도 잊었다. 나홀로 용산역에서 KTX 로 목포에 내려온 당신을 " 열성 당원"으로 임명합니다. [ 일급 비밀 : 교섭을 잘만 하면 고니를 더 얻어 먹을수 있다 ]

 

민어 회와 매운탕으로 한껏 입을 호강시키고, 두패로 나뉘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한 팀은 노래 방으로!  한 팀은 목포 야경 산책으로! 아래 그림들은 목포시 해안을 산책하며 잡은 야경사진들이다.

목포시 야경-1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 간밤 음습한 그 노래방에서는? 도통 말들이 없는, 꿀먹은 벙어리들이 되였다 !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간밤에 어떤 해퍼닝이 있었는지를 !!!

목포시 야경-2

목포시 야경-3

목포시 야경-4

 

아래 글들은 인터넷에서 퍼온 영란횟집과 민어회에 대한 멘트이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민어의 집산지로는 아직도 목포가 유명한데 목포의 영란횟집(061-243-7311) 주인 박영란씨(49)에 의하면 서너 물때가 물발이 간드러져 민어나 조기 물때고, 일고여덟 물때는 물발이 운다고 표현한다. 미끼는 산새우를 쓰는데 이 놈의 성깔이 급해 수족관에서는 살릴 수 없어 꼬리 피를 빼내고 얼음에 저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부터는 양식에 성공해서 민어 값도 폭락했다.
20년 전통의 목포 명물 횟집 <영란횟집> 이곳은 1978년 주인 박영란씨가 모친과 함께 문을 연 곳이다. 상호가 영란횟집인 것도 주인의 이름을 걸고 음식을 내어 놓는 만큼 정성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에서 주인 박영란씨의 이름에서 딴 것이라고 한다. 이곳의 주메뉴는 민어! 목포에서 가까운 신안군 입자도와 지도쪽에서 많이 잡히는 민어는 다른 바다생선과는 달리 물표면에 가깝게 떠다니는 고기로 큰 것은 25kg이나 나간다고 한다. 더욱이 비늘을 긁어내고 나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을 뿐더러 맛도 비린내가 없이 담백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생선회 중에 하나이다. 민어는 살은 회로 먹고 뼈는 매운탕으로 끓여

 

먹는데 매운탕을 끓여 기름기가 없어 놓으면 담백하면서도 고소하다. 또한 껍질과 부레, 지느러미쪽 날개도 회를 뜰 때 따로 떼어 내어 기름소금과 함께 찍어 먹는데 별미 중에 별미라고 한다. 이렇게 민어는 정말 버릴 것이 없는 생선이다. 민어는 시간에 따라 2번의 맛을 내는 신기한 생선이기도 하다. 빛깔이 연분홍 진달래 꽃빛을 띄는데 금방 잡았을 때는 탄력이 있어 쫄깃한 맛이 나고 약간 시간이 지나면 부드러운 맛을 낸다고 한다. 그래서 목포사람들은 민어를 횟감 중에 횟감으로 손꼽는다고 한다. 요즘 민어회전문점이 여러 곳에 들어서고 있지만 민어의 참맛을 아는 사람들은 영란횟집을 찾는다고 한다. 특히 여름철인 7~8월은 민어의 산란기를 앞두고 가장 기름지고 맛있는 시기인데다 휴가철이 겹쳐 전국 각지에서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영란횟집은 이곳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집에서 편안히 이곳의 싱싱한 회를 맛보길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서 배달서비스를 하고 있다. 한 접시도 정성을 듬뿍 담아 배달이 가능하다고 한다.

7월9일 월요일.
새아침이 밝았다.1박2일이니 오늘은 싫어도 떠나야되는 마지막 날이다.

 

 

 

아침 해장은 위 이모네 식당에서!

위 그림에 있는 반찬외에 시원한 조개국과 김이 또있다. 남도의 음식문화를 살짝 엿볼수있는 그림인데, 이번에는 그 인심을 한번 살펴보자. 한사람이 백반을 주문해도 위 그림의 반찬이 다 밥상에 오르고, 3~4명이 백반을 시켜도 오르는 반찬의 수는 동일하다. 그리고 추가 요청하는 반찬은 무료로 무한대로 나온다. 그리고도 한사람당 백반 값은 \5,000 이다 !!! 축복 받으리라 ! 항도 목포여 ! 따습고 넘치는 인심이여 !

 

입맛 찾아 천리를 마다 안하는 미식가들이 나주 곰탕을 그냥 지나칠수가 있겠는가!

 

 

미식가 김종대 회원이 짜놓은 스케쥴에 따라 당도한 곳이 바로 여기다. 목포발 서울행을 탄게 아니라 목포발 나주행 열차를 타고 점심시간에 맞춰 찾어온 곰탕집 하얀집이다. 이집역시 이쪽으로 먹거리 여행을 하면 반듯이 들리는 성지와 같은 곳이된지도 5~6년이 된다. 자 이번에는 나주 곰탕집 그 명성을 한번 살펴보자.

남도 육류문화에서 가장 널리 보급되어 정착된 것이 나주 곰탕이다. 천년 목사골로 농경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알다시피 설렁탕은 왕이 농사를 장려하고 기원하기 위해 종로의 선농단에서 제를 올렸기에 붙여진 이름이란것이 일반적 견해다.
그런데 곰탕의 유래는 아직도 확실치가 않다. 물론 국밥에서 유래했을 터이지만 함평 우시장설, 남평 우시장설,심지어는 창평 우시장설까지 나오고, 나주는 관아의 저잣거리이기 때문에 소머리 국밥이 구실아치[아전]들의 입맛에 맞게 정착되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뿐이다.
탕반음식을 주로 하고 있는 우리 음식문화에 어쨌든 곰탕은 입맛에 딱 맞을수 밖에 없다.
원래 곰탕은 ㄱ사태살, 쇠꼬리,허파,양곱창을 썰지 않고 덩이째 삶아 무,파등을 넣어 푹 고아내는 탕이었으며,설렁탕은 쇠뼈가 많이 들어가고 그 쇠뼈의 골수를 우려내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럼에도 나주곰탕은 세월이 가도 향수를 달래는 음식의 하나로서 그 자리매김은 영원할것 같다.
하얀집, 노안집, 남평식당이 그 원조들로 비슷한 연대에 출발한 집들이다. 곰탕은 양지와 사태를 주로 쓰고 수육은 머리,혀,볼때기살을 주로 하며 삶는 과정에서 차별화 된다.
소 부위 살을 아프리카 보디족이 40여 부위, 영국이 25부위 정도로 구분하는데 비해 우리 민족은 125부위 정도로 세분하면서 소의 혓바닥 잇몸살까지 긁어먹는 희한한 민족임에 틀림이없다 

 

 

이번에 와서보니 하얀집 주인장 길한수씨가 명인으로 추대되여있었다.

 

나주 곰탕! 푹 곤 진국의 이 맛! 이 맛을 잊지못해 또 찾아 오리라!

 

전국 미식가들에게 써비스용으로 한 장!

 

 

정수루
수루는 조선시대 나주목 관아(官衙,동헌)의 정문이다. 우복룡 목사가 (1602.10.3∼1604) 건립하였다고 군지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민백남 목사가 1753년에 건립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1층의 양측면만 벽체로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되어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낮은 원형초석(전면열에는 장초석을 놓음)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2층 바닥에는 장마루를 깔았다. 2층기둥 위로는 주두를 놓고 창방을 걸었으며 그 위로는 주간마다 1구씩의 화반(花盤)을 배치하였다. 공포는 행공첨차를 두어 외목도리의 장여를 받게한 2익공식(翼工式)으로 쇠서에는 연꽃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대량(大樑)을 걸고 그 위로 종량(宗樑)을 얹힌 5()구조이며, 천장은 종량위로만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나머지는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양 측면의 중심기둥으로부터 대량위로 걸은 충량의 머리는 용두(龍頭)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좌측용은 여의주가 없고 우측용은 여의주를 물고 있다. 2층 누각에는 대형 북과 정수루(正綏樓)편액 (가로 158, 세로 55)이 걸려 있다. 현재 북은 198611월에 김영호씨가 다시 설치한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정수루 아래로 자동차가 통행하였으나 건물의 안전상 우회도로를 내서 통행을 돕고 있다.  

 

 

 

잠시 비를 피해 금성관 정문 밑에서 한담을 나누고 있다. 아마도 늦게 합류한 이장춘 박사에게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는듯...

 

금성관

선시대 나주목의 객사(客舍) 건물이다. 객사란 고려.조선때 지방 官廳舍로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두고 매월 초하루, 보름때 고을의 관리와 선비들이 모여 망궐례(望闕禮)를 올리며 중앙에서 내려오는 관리들을 양쪽의 翼廊에서 留宿하게 하던 곳이다. 조정에서 제정한 율령이 각 지방에서 반포되는 장소이기도 해서 장날인 2일과 7일에 백성들이 모여서 방을 보고 반포된 율령의 내용을 알아보았던 곳이다. 또한 임진왜란때 의병 김천일 선생이 의병을 모아 출병식을 가졌던 곳이고, 명성왕후가 일본인 낭인들의 손에 시해되었을 때 빈소를 마련하여 항일정신을 고조시킨 곳이기도 하다. 초창(初創)은 성종 18∼20(1487. 4.12 ∼1489. 7)사이에 나주목사로 재직한 이유인(李有仁)이 건립하였다. 이후 선조 36(1603)에 크게 重修하였고 1884∼1886년 사이에 박규동(朴奎東)목사가 중수하였다. 금성관은 현재는 사라진 동익과 서익을 제외하고도 전국의 객사 건물중 가장 큰 97평이다. 일제시대에는 창호마루등 건물의 내부를 개조하여 군청사(郡廳舍)로 사용되었다. 그후 19639월에 부분적인 보수를 하였다가 19769. 10 ∼ 19776. 30일 완전해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시 시작된 열차칸 대담은 그 끝을 모르고...바카스 주신도, 우리도. 자다 깨다, 쉬다 마시다 열차는 달리고 달려 수원역에 당도 하였고 1박 2일의 노짱들의 먹거리 대장정 여행도 그 막을 내렸다. 1년에 한번은 꼭 다시 찾어오자고 맹세를 하며...

[배경음악: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