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사 모

사사모 - 북촌 한옥 마을순례 - 1 [ 2012-02-21 ]

고향 길 2018. 9. 28.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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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들어 처음으로 출사를 나가게 되였다. 12일간의 네팔, 인도 여행을 마치고 3일전에 귀국한 참벗 회장님이 피로를 풀 새도없이, 강행을 자처하고 나선 덕분이다. 가까운 서울 북촌 한옥마을를 출사지로 택했다. 7명중 3명이 불참, 4명이 단초롭게 출사하게 되였다. 오늘은 북촌만 순례하고, 다음엔 서촌을 방문해 볼 계획이다. 그렇다면 먼저 북촌에 대해 간략한 정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북촌은 조선시대 한양의 중심부인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잡았다. 예로부터 권세가들의 주거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1906년 호적자료에 따르면 북촌 전체 인구 1241(1932가구) 중 양반과 관료의 비중은 무려 43.6%에 달했다하지만 일제강점기 도시로 인구가 집중됨에 따라 주택난이 가중되면서 중대형 한옥이 점차 사라지고 필지가 작게 분할돼 소규모 한옥들이 집중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유리와 타일 등 새로운 재료가 도입되고 평면이 표준화되면서 전통 양식과는 다른 형태의 한옥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

해방 이후 1960년까지만 해도 상류층이 주로 모여 살았다. 1970년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거주 계층과 주변 환경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특히 정부에서 공공주도의 일방적인 한옥보전 정책을 고수하면서도 북촌길 확장 등을 위해 되레 한옥을 철거하는 등 주민들의 불만과 불신이 가중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와서는 규제가 대폭 완화돼 한옥 대신 다세대 주택이 대거 들어서는 등 난개발이 가속화됐다.

 

서울시는 2001년 북촌전담조직까지 신설해 본격적으로 북촌 보존에 나섰다. 2006년 북촌 장기발전구상을 수립했고 최근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하는 등 북촌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발돋움시키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북촌은 살아 있는 문화유산의 보고다. 보선 생가(사적 제438),중앙고교 본관(281)
성삼문 집터,유길준 유배지 등 사적과 재동백송(천연기념물 제8),삼청동 측백나무(255) 등 천연기념물이 즐비하다
.

이 밖에 가회박물관 등 각종 박물관과 한옥체험관 등 보고 즐길거리도 많다. 특히 1930년대에 지어져 사적으로 지정된 중앙고 본관은 드라마 '겨울 연가'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까지 살았던 가회동 31 한옥도 관광객이 즐겨 찾는 코스다. 종로구는 이런 관광 자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관광 활성화에 나섰다. 종로구는 이달 초 티켓 한 장으로 5개의 박물관을 이용할 수 있는 '북촌 박물관 자유이용권'을 도입했다. 대상 박물관은 가회박물관,한상수 자수박물관,불교미술 박물관,동림 매듭 박물관,서울 닭 문화관 등 5곳으로 1만원(청소년 5000)만 내면 한꺼번에 관람이 가능하다
.

북촌 관광가이드 프로그램도 현재 운영 중이다. 영어와 일어 통역이 가능한 문화유산 해설사가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정해진 코스를 함께 돌며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예약제로 운영되며 연중 무휴다. 도보 관광코스로는 가회동 11 일대(A코스)와 삼청동길 지역(B코스)이 있다. 삼청동길 주변에 즐비한 주요 갤러리를 둘러보는 '북촌 갤러리 투어 코스'와 삼청동길 감고당길 일대 맛집들과 연계한 '북촌 먹거리 코스' 등도 마련됐다.

 

 

경기고등학교 출신에 가회동과 삼청동에서 거주했던 최 화백이 동행을 한건 행운이며 동시에 불행이 되였다. 너무도 이 지역 정보에 밝은 터라 쉽게 쉽게 앞장서 안내를 하다보니 쉬엄 쉬엄 지도를 보며 사진찍는 재미는 기대할수 없게 되였고, 그러다 보니 빼먹고 지나친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게 되였다. 먼저 안내해준 곳은 윤보선 대통령 사저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전직 대통령 윤보선 사저 - 1

 전직 대통령 윤보선 사저 - 2

전직 대통령 윤보선 사저 - 3

 

 위치 : 서울 종로구 안국동 8-1 (일곽(1,411.7평)

 

 

 윤보선 사저 내부 - 1

 

 

  윤보선 사저 내부 - 2

 

 

  윤보선 사저 내부 - 3

 

 

 윤보선 사저 내부 - 4

  윤보선 사저 내부 - 5

  윤보선 사저 내부 - 6

 

윤보선 전대통령이 살았던 집으로,
고종 7년(1870)에 건립되어 윤보선 전대통령의 부친 치소(致昭)공이 1910년경 매입한 것이다.
윤보선 전대통령은 7∼8세경에 이곳에 살기 시작하였으며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청와대가 아닌 이곳에서 집무를 하였다. 이 집은 1910년 이후에 박영효 선생이 일본에서 귀국하여 잠시 머물기도 하였다.

서울의 상류민가로서 비교적 넓은 대지 안에 바깥사랑채, 안사랑채, 안채, 대문 및 행랑채, 창고 등을 갖추고 있다.  각 건물은 외형상으로는 한옥같이 보이나 세부적인 것은 중국 청나라 말기 수법을 보인다.
이는 윤보선 전대통령이 상해 임시정부 시절 중국에서 보고 느낀 중국적인 양식을 가미한 것으로 거주 당시의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실내장식 및 가구는 중국이나 영국 등지에서 경험한 것을 기본으로 실생활에 편리하게 하기 위해 서양식 가구임에도 전통기법을 가미하여 새로운 의장으로 개선하였다.
바깥사랑채의 현판인 남청헌은 순조가 쓴 것으로 생각되며 김옥균이 쓴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는 현판도 걸려 있는 등 각 건물에는 어필이나 유명인사가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랑채 뒤뜰에는 연못이 있고 매화, 향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전통 조경은 아니지만 19세기 말 새롭게 조성된 근대조경의 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이 가옥은 또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정당인 한국민주당의 산실 역할을 한 장소이고 1950∼1970년대
야당의 사무실 겸 회의실로 사용되었으며 민주운동의 본부이자 피난처로 사용되기도 한 한국정치사적 의의가 큰 곳이다. 140여년 전의 양반가옥으로 목조 한와지붕은 전통 건축으로 하고 세부장식과 생활가구 등은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한 이 집은 구한말 세도가의 위용과 건축양식 및 주거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어 건축 문화사적인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안동교회 별관 " 소허당 "은 토요일 개방. 한옥 내부를 제대로 감상하며 사진을 찍을수 있다.

 

 한옥을 개조해 작은 쇼핑점이 되였다.

옛 경기고등학교 입구. 지금은 정독 도서관. 흑백으로 한장 1

 

스타일이스트 갯돌, 앞장서 카메라 사냥감을 탐색하고 있다.

 

 

이리 저리 뒤엉킨 전선줄과 담벽에 닥지 닥지 부착되여 있는 전기 계량기들, 심지어 가스통과 쓰레기 비닐봉지등, 사진 방해물들이 너무도 많다.

 

 

깃발든 가이드가 앞장서고...틀림없는 일본인 관광객들!

이 일본인은 단독 여행객, 지도를 보며 열심히 찾아 다닌다.

 

 

 

 

 대체로 일본 여성들의 미모는 한국 여인들의 미모와는 견줄수가 없는 수준이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일본 여성 관광객들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열정적으로 가이드를 하고 있는 최 화백, 언제 저렇게 일본어를 공부했지?  일본에서 1년간 거주한거로 쌓은 실력이 아닌듯 한데...아가씨들은 연신 " 아리가도 고자이마스".

 

 

 

최 화백, 감개가 무량이겠소 ! 옛집이 그대로 보전되여 있다는건 보통 행운이 아니지요!  

김 할란 박사 사저 돌담벽.

김 할란 박사 사저.

 

 

 

 

 

 

  트윈폴리오 - 하얀 손수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