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모 - 북촌 한옥 마을순례 - 1 [ 2012-02-21 ]
2월들어 처음으로 출사를 나가게 되였다. 12일간의 네팔, 인도 여행을 마치고 3일전에 귀국한 참벗 회장님이 피로를 풀 새도없이, 강행을 자처하고 나선 덕분이다. 가까운 서울 북촌 한옥마을를 출사지로 택했다. 7명중 3명이 불참, 4명이 단초롭게 출사하게 되였다. 오늘은 북촌만 순례하고, 다음엔 서촌을 방문해 볼 계획이다. 그렇다면 먼저 북촌에 대해 간략한 정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북촌은 조선시대 한양의 중심부인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잡았다. 예로부터 권세가들의 주거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1906년 호적자료에 따르면 북촌 전체 인구 1만241명(1932가구) 중 양반과 관료의 비중은 무려 43.6%에 달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도시로 인구가 집중됨에 따라 주택난이 가중되면서 중대형 한옥이 점차 사라지고 필지가 작게 분할돼 소규모 한옥들이 집중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2001년 북촌전담조직까지 신설해 본격적으로 북촌 보존에 나섰다. 2006년 북촌 장기발전구상을 수립했고 최근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하기로 하는 등 북촌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발돋움시키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고등학교 출신에 가회동과 삼청동에서 거주했던 최 화백이 동행을 한건 행운이며 동시에 불행이 되였다. 너무도 이 지역 정보에 밝은 터라 쉽게 쉽게 앞장서 안내를 하다보니 쉬엄 쉬엄 지도를 보며 사진찍는 재미는 기대할수 없게 되였고, 그러다 보니 빼먹고 지나친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게 되였다. 먼저 안내해준 곳은 윤보선 대통령 사저 골목길로 접어 들었다. 전직 대통령 윤보선 사저 - 1 전직 대통령 윤보선 사저 - 2 전직 대통령 윤보선 사저 - 3
위치 : 서울 종로구 안국동 8-1 (일곽(1,411.7평)
윤보선 사저 내부 - 1
윤보선 사저 내부 - 2
윤보선 사저 내부 - 3
윤보선 사저 내부 - 4 윤보선 사저 내부 - 5 윤보선 사저 내부 - 6
윤보선 전대통령이 살았던 집으로,
고종 7년(1870)에 건립되어 윤보선 전대통령의 부친 치소(致昭)공이 1910년경 매입한 것이다.
윤보선 전대통령은 7∼8세경에 이곳에 살기 시작하였으며 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에도 청와대가 아닌 이곳에서 집무를 하였다. 이 집은 1910년 이후에 박영효 선생이 일본에서 귀국하여 잠시 머물기도 하였다. 서울의 상류민가로서 비교적 넓은 대지 안에 바깥사랑채, 안사랑채, 안채, 대문 및 행랑채, 창고 등을 갖추고 있다. 각 건물은 외형상으로는 한옥같이 보이나 세부적인 것은 중국 청나라 말기 수법을 보인다. 이는 윤보선 전대통령이 상해 임시정부 시절 중국에서 보고 느낀 중국적인 양식을 가미한 것으로 거주 당시의 특징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실내장식 및 가구는 중국이나 영국 등지에서 경험한 것을 기본으로 실생활에 편리하게 하기 위해 서양식 가구임에도 전통기법을 가미하여 새로운 의장으로 개선하였다.
바깥사랑채의 현판인 남청헌은 순조가 쓴 것으로 생각되며 김옥균이 쓴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는 현판도 걸려 있는 등 각 건물에는 어필이나 유명인사가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랑채 뒤뜰에는 연못이 있고 매화, 향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전통 조경은 아니지만 19세기 말 새롭게 조성된 근대조경의 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이 가옥은 또한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정당인 한국민주당의 산실 역할을 한 장소이고 1950∼1970년대 야당의 사무실 겸 회의실로 사용되었으며 민주운동의 본부이자 피난처로 사용되기도 한 한국정치사적 의의가 큰 곳이다. 140여년 전의 양반가옥으로 목조 한와지붕은 전통 건축으로 하고 세부장식과 생활가구 등은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한 이 집은 구한말 세도가의 위용과 건축양식 및 주거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어 건축 문화사적인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안동교회 별관 " 소허당 "은 토요일 개방. 한옥 내부를 제대로 감상하며 사진을 찍을수 있다.
한옥을 개조해 작은 쇼핑점이 되였다. 옛 경기고등학교 입구. 지금은 정독 도서관. 흑백으로 한장 1
스타일이스트 갯돌, 앞장서 카메라 사냥감을 탐색하고 있다.
이리 저리 뒤엉킨 전선줄과 담벽에 닥지 닥지 부착되여 있는 전기 계량기들, 심지어 가스통과 쓰레기 비닐봉지등, 사진 방해물들이 너무도 많다.
깃발든 가이드가 앞장서고...틀림없는 일본인 관광객들! 이 일본인은 단독 여행객, 지도를 보며 열심히 찾아 다닌다.
대체로 일본 여성들의 미모는 한국 여인들의 미모와는 견줄수가 없는 수준이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일본 여성 관광객들에게 유창한 일본어로 열정적으로 가이드를 하고 있는 최 화백, 언제 저렇게 일본어를 공부했지? 일본에서 1년간 거주한거로 쌓은 실력이 아닌듯 한데...아가씨들은 연신 " 아리가도 고자이마스".
최 화백, 감개가 무량이겠소 ! 옛집이 그대로 보전되여 있다는건 보통 행운이 아니지요! 김 할란 박사 사저 돌담벽. 김 할란 박사 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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