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추억 만들기

2007- 동창회 가을 나들이 - 2 [ 2007-10-26 ]

고향 길 2018. 1. 4. 06:49

 

자운서원
조선시대 대 학자인 율곡 이이(李珥, 1536~1584)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사당으로 율곡선생 일가의 묘가 있다. 파주 율곡리는 덕수 이씨의 세거지였다. 특히, 율곡리라는 지명에서 호를 따 왔을 정도로 선생의 일생에 깊은 영향을 미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선생은 현실적 문제해결을 중시하는 실천적 학문으로 성리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는데 선생이 이끌던 기호학파(畿湖學派)는 당시 이황선생의 영남학파와 함께 조선 유학계의 쌍벽을 이루었다고 한다. 관직으로는 황해도 관찰사, 사헌부 대사헌, 대제학, 호조, 병조, 이조 판서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그가 주장한 십만양병설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고 있다.

자운서원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율곡 기념관. 이율곡과 신사임당의 일가의 글과 그림, 저서를 모아 놓았다. 율곡선생의 저서와 남겨진 한시뿐 아니라 신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이 한폭의 그림과 자수로 남겨져 있는 초충도 볼 수 있다.

서원에는 율곡선생과 신사임당의 영정도 모셔져 있다. 선생이 자운(紫雲)이라는 사액을 받은 건 사후 66년 후인 효종 원년(1650)이다. 대원군 때 훼철되어 빈 터로 남아있었으나 1970년 유림들의 기금과 국가 지원금으로 오늘의 모습을 복원한 것이다. 매년 10월 율곡문화제 때 제향을 올린다.

자운서원의 핵심은 이율곡 일가의 묘이다. 율곡 선생 내외의 묘는 물론, 신사임당 내외의 합장 묘, 이율곡 선생 가족의 묘 등 모두 13기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이 곳은 현장학습을 목적으로 단체 관람 오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방문객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다. 따라서 서원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묘한 운치를 풍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임진강변에는 선생이 어린시절 학문을 익히고 은퇴후에는 후진을 양성했다는 화석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화석정에는 임진강 북 쪽의 땅과 함께 그 시원한 강줄기가 한 눈에 들어와 방문객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빼어난 조망을 지녔다.

 

 

 

 

 

 

 

 

 

 

 

 

 

 

 

 

 

 

 

 

 

 

 

 

 

 

 

우리나라 여성의 사표, 여류예술가
이곳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어머니이며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인 사임당신(師任堂申)의 묘이며 남편 이원수(李元秀)와의 합장묘이다.

신사임당은 조선 연산군(燕山君) 10(1504)에 외가인 강릉에서 진사(進仕) 신명화(申命和)의 무남 5녀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19세때 이원수에게 출가하였는데 친정에 아들이 없어 남편의 동의를 얻어 친정에 머문 뒤, 시댁의 오랜 터전인 파주 율곡리에서 생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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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되어서야 서울 수진방 시댁에서 시댁살림을 주관하고 슬하에 43녀를 둔 다복한 생활을 하였다. 사임당은 당호(堂號)로서 그 뜻은 최고의 여성상인 중국 주()나라 문왕(文王)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본받았다고 한다.


사임당은 이이와 같은 대정치가이자 대학자를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로서, 남편을 잘 보필한 아내로서, 그리고 교양과 학문을 갖추고 천부적 소질을 발휘한 예술가로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성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묘역은 봉분앞 중앙에 묘비가 있고 묘비 앞에 상석과 향로석이 일렬로 놓여있다. 오른쪽에는 후대에 새로세운 묘비가 있으며 좌우로 문인석이 자리하고 있다.

 

 

 

 

 

 

 

 

 

 

[배경음악: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