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추억 만들기

09년 동창회 단풍맞이 야유회 - 영 릉 - 2 -2 [ 2009-10-18 ]

고향 길 2018. 1. 4. 09:38

 

 

 

 

 

 

 

 

 

 

 

 

 

 

 

 

  

 

 

 

 

 

안타깝게도 곧 음식점이 다른곳으로 이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시장끼가 동할즈음 자리를 잡고, 막걸리, 소주는 취향따라 선택이고, 음식은 셋트로 되어 나온다.

 여주 막걸리 맛이 그럴듯 하다. 요즘 소주에서 다들 막걸리로 바뀐듯, 테이블마닥 막걸리 항아리다. 나의 소견으론 부산 산성 막걸리가 단연 으뜸이라고 확신한다.

 

 

 

 

 

 

 

 

 도토리 전이라고 하는데, 밀가루 대신, 도토리 가루로 오징어와 양파등을 넣고 부친건데 맛이 제법 먹을만 하다.

 책임감이 투철한 이진수 회장이 인사말과 일정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도토리 잡채, 난생 처음 먹어보았다. 음식 전체가 요즘 유행하다 싶이된 소위 웰빙 음식이다.

 도토리 묵사발 ! 시원한 국물과 함께 후루룩 마시는게 맛과 재미가 쏠쏠하다.

 국물이 맛있다.

 

 

 



 

1922년 작. 제목은 ‘사우(思友)’였으나 뒤에 제목을 쉽게 풀어쓰게 되어 ‘동무생각’으로 바뀌었다. 원래 동요조의 선율이 바탕을 이룬, 작곡자의 가곡으로서는 퍽 고조된 작품으로, 악보에 정리된 곡을 작사자에게 부탁해서 가사를 붙였다. 이 노래는 작곡되자마자 널리 퍼져 삽시간에 젊은이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전반부의 전형적인 동요풍에서 후반부의 변박자에 이르러서 감정을 격화시킨 것이 퍽 효과적이다.

 

박태준 (朴泰俊 1900~1986)

작곡가·합창지휘자. 대구 출생. 대구계성학교를 거쳐 평양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실전문학교 재학시 서양 선교사들에게서 성악과 작곡의 기초법을 배워 동요의 초창기 작품인 《가을밤》 《골목길》 등을 작곡하였다. 졸업 후 마산의 창신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시인 이은상과 함께 《동무생각》 등 예술가곡 형태의 노래를 작곡하였다.

 

1932년 이후 미국의 터스컬럼대학과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합창지휘를 배우고 합창지휘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36년 숭실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하였으며, 58년 연세대학교에 종교음악과를 설치하고 음악대학 학장을 지냈다. 68년 이후 한국음악협회 회장을 지내면서 서울음악제를 창설하였다. 작품은 동요 등 150여 곡이고, 문화훈장·서울시 문화상·예술원상을 수상하였다.

 

작곡가 박태준(朴泰俊)은, 1900년 대구 동산동에서 태어나 1986년 10월 20일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개신교집안에서 자라났고 역시 개신교계 학교인 계성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졸업 후 대구제일교회의 오르간연주자가 되었다. 숭실전문학교에 진학해 음악을 전공하고 1921~1923년 마산 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때 노산 이은상이 같은 학교에 국어교사로 재직하였으며, 두 사람은 서로 교분이 두터웠다. 박태준은 계성학교에 다닐 무렵 대구제일의 명문여학교인 경북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 여학생을 무척 사모했으나 내성적인 성품 탓에 말 한마디 못했다고 한다.

 

노산이 이 얘기를 듣고 “잊지 못할 그 소녀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그 곡 안에 담아 두면 박 선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냐.”며 “가사를 써 줄 테니 곡을 붙여보겠나?” 하고 즉석에서 시를 써서 건넨다. 박태준이 살던 대구 ‘동산동’은 동산이 하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동산엔 미국에서 온 세 선교사의 사택이 자리하고 있고, 또 그들이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 최초로 심은 사과나무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 사과나무의 자손목이 남아 있지만 대구가 사과의 고장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분의 선교사들이 살기 위해 지은 집은 모두 2층 양옥으로 지금은 지방유형문화재로 등록돼 있으며, 그 집의 담벼락엔 하나같이 푸른 담쟁이넝쿨이 휘감아 오르는 고풍스런 멋을 자랑한다.

 

 

 

 


곡의 가사에 보이는 ‘청라언덕’이란,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를 써서 박태준이 살던 동네언덕을 지칭한 말이다. 한 가지 더 기가 막히는 표현은 그가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다니던 학교(경북여고)의 교화가 백합화이기 때문에 가사에 등장하는 백합화는 바로 그 여학생을 두고 한말이다. 그러면서도 ‘짝사랑’이니, ‘연인생각’이니 하는 통속적인 말을 삼가고 그저 ‘동무생각’(처음엔 ‘사우(思友)’라고 함)으로 명명한 것을 보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 나리꽃 향기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 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청라언덕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으나, 대구 계산성당에서 길을 건너 대구 제일교회가

바라 보이는 정면에서 왼편으로 난 계단길이 가장 운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