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일 프랑크푸르트 - 괴테 하우스 - 1
점식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괴테하우스를 찾어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가고 있다. 일요일이라 그런가 달리는 버스에서 잡은 시내 모습은 비교적 한산해 보인다. 거리가 이리도 한산 할수가 없다.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느낄수가 없다. 생활의 여유란 무었인가? 맹열한 삶,고달픈 삶을 살아온 우리들에게는 좀 섬득하기 조차하다. 괴테하우스(Goethehaus) 프랑크푸르트 시민의 위대한 아들'이라는 호칭을 받았던 대문호 괴테가 1749년에 태어나 대학 입학까지 16년을 보낸 집이다. 전쟁후에 재건된 것으로 괴테가 태어난 방은 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집필하던 방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집필됐던 괴테하우스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되었으나, 전후 충실히 복원돼 현재는 자필원고와 초상화를 전시한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괴테는 이 집을 자유형의 계단, 정원의 아름다운 전경을 갖춘 밝고 즐거운 넓은 집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갖게된 오스트리아에 대한 동경과 사랑, 가족들간의 애정을 엿 볼 수 있기도 하다. 이 곳에는 괴테의 생애에 관한 서류와 작품들, 유명한 예술가들의 조각과 회화가 전시되어 있다. 중국의 인력거나 인도의 사이클 릭샤와 비교해 보면 데자인이 세련되여 마치 스타 워에 나올법한 2인승 인력거로 보인다. 괴테 하우스를 방문했던 가족들인데 자전거 보호거치대 에서 자전거를 풀고 있다. 이런류의 인프라가 잘 되여있어야 자전거 애용자들이 늘어나게 되여있다 빵이나 케익을 구울때 사용했던 몰드 라고 한다. 얼굴 붉혀주는 부끄러운 푯말이다. 얼마나 한국인들이 규정을 어겼으면 이렇게 한국어로 된 경고문을 내 놓았을까 ! 스위스의 융푸라우 정상에서도 위와 똑같은 경고문과, 라면 국물을 버리지 말라는 경고문도 함께 보았었다. 전 세계인이 모여드는 곳에 유독 한글로만 ! 괴테가 상당히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한걸 알겠다. 이 집에서 태여나 16년간 살았다고 한다. 그때 황제의 고문관이었던 아버지와 프랑크푸르트의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둔 괴테는, 명문 집안의 귀족답게, 세로로 현(絃)이 들어 있는 그 당시의 피아노며, 중국식 벽지를 쓴 응접실이며, 바로크식의 커다란 시계며, 거울 등이, 우리의 시선을 끈다. 위의 시계 그림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맨 위에는 2008년 5월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그 뿐 아니라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 양편에 있는것도 뭔가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괴테의 불후의 명작이라는 " 파우스트 " 를 끝까지 읽지를 못했다.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 중도에 읽기를 포기했다.그때 고등학교 시절 포기했으면 지금쯤이면 재미를 느낄듯도 한 나이가 되였건만, 지금도 읽을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오랜 삶에서 오는 영혼의 때가 결국은 사람을 이렇게 퇴보시키나 보다. 괴테 하우스 1~2층을 한바퀴 돌아보고 일찍감치 의자에서 쉬고있는 내외분, 피곤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