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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메타버스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를 일컫는 말로, 1992년 미국 SF 작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메타버스는 5G 상용화에 따른 정보통신기술 발달과 코로나19 팬더믹에 따른 비대면 추세 가속화로 점차 주목받고 있다. 외국어 표기 Metaverse(영어)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가리킨다. 메타버스는 가상현실(VR,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첨단 기술)보다 한 단계 더 진화..

WinKa 2022.01.01

정민(鄭珉) 교수의 세설신어(世說新語) [11 회]

[11] '호질(虎叱)'의 행간 '호질'은 '열하일기'에 실려 있다. 북경으로 향하는 길목인 옥전현(玉田縣)을 지날 때, 심유붕(沈有朋)이란 이의 점포 벽에 걸려 있던 것을 베꼈다는 글이다. 작품 서두에서 범은 영특하고 거룩하고 문무를 갖추었으며, 자애와 효성, 지혜와 어짊을 지닌 용맹하고 웅장한 천하무적의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바로 뒤이어 그 범조차 꼼짝 못하고 쩔쩔매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비위와 죽우(竹牛), 자백(玆白)과 맹용 같은 짐승들이 그것이다. 범이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 넋이 창귀가 되어 범의 하수인 노릇을 한다. 그들의 이름은 굴각(屈閣), 이올(彛兀), 육혼 등이다. 무슨 말인가? 범의 앞에 붙은 수식어는 청나라 황제의 존호(尊號) 앞에 붙는 표현을 조금 바꿔 조합했다. 범은 청나라 ..

WinKa 2021.08.21

정민(鄭珉) 교수의 세설신어(世說新語) 10 회

[10]열하일기 완성본 여행은 낯선 풍물 속에서 자신과 맞대면하는 일이다. 1780년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삼종형인 박명원을 따라 연행길에 동행했다. 그는 여정 도중 곳곳에서 당시 조선의 맨얼굴을 보았다. 망한 지 130년이 더 된 명나라의 연호를 아직도 고집하는 나라. 백이 숙제의 사당을 지날 때면 우정 싸 가지고 간 고사리나물을 먹고 사당에 참배하며 그 절의를 기리는 사람들. 우리를 돕다가 망했으니, 청을 무찔러 명나라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얼핏 보아 당당한 북벌(北伐)의 논리. 사람들은 그들의 발전한 문물은 오랑캐 냄새가 난다며 굳이 외면한다. 대신 전국시대 연나라 왕이 황금을 쌓아 놓고 천하의 인재를 초빙했다는 황금대(黃金臺)나 범인 줄 알고 활을 쏘았는데 밝은 ..

WinKa 2021.08.21

정민(鄭珉) 교수의 세설신어(世說新語) 8 회

[8] 기(機) 기(機)는 목(木)과 기(幾)를 합한 글자다. 복잡한 장치로 된 기구를 말한다. 원래는 쇠뇌를 발사하는 방아쇠를 뜻했는데, 나중에는 이런저런 기계장치를 가리키는 말로 썼다. 이 글자가 들어간 어휘를 보면 대부분 이것과 저것이 나뉘는 지점과 관련된다. 기계장치에 방아쇠를 당기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는 예측이 어렵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판단을 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기(機)는 미세해서 기미(機微)요, 비밀스러워서 기밀(機密)이다. 하늘의 기밀은 천기(天機)니 이것은 함부로 누설하면 안 된다. 기를 잘못 다루면 위험해서 위기(危機)가 온다. 하지만 이 기가 모여 있는 지점은 기회(機會)의 순간이기도 하다. 기지(機智)가 있는 사람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실기(..

WinKa 2021.08.21

정민(鄭珉) 교수의 세설신어(世說新語) 7 회

[7] 다산의 학술논쟁 서울 종로구 인사동 공화랑에서 10일부터 조선시대 서화감상전 〈안목(眼目)과 안복(眼福)〉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친필 서화 다섯 점이 처음 공개되었다. 필자는 전시에 앞서 이들 작품을 검토하는 안복을 누렸다. 이 중 16장 32쪽에 달하는 〈송이익위논남북학술설(送李翊衛論南北學術說)〉이란 글이 흥미로웠다. 옷감과 종이를 잘라 써내려 간 다산 특유의 필치도 압권이지만, 내용이 더 인상적이었다. 1822년 다산이 61세 때 쓴 글이다.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관원을 지낸 이익위(李翊衛)는 영남의 남인이었다. 그는 65세 때 낙향하는 길에 두릉(杜陵)의 여유당으로 다산을 불쑥 찾았다. 두 사람은 22년 만에 감격적으로 재회했다. 반가운 해후 끝에 화제가 공부 ..

WinKa 2021.08.21

정민(鄭珉) 교수의 세설신어(世說新語) 6 회

[6]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 18세기 실학자 황윤석(黃胤錫·1729~ 1791)은 자신의 일기 《이재난고(��齋亂藁)》에서 당시 부안현감으로 있던 이운해(李運海·1710~?)가 1755년경에 지은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란 책을 소개했다. 이운해는 그때까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웃 고창 선운사의 야생차를 따와서, 증세에 따라 향약(香藥)을 가미해 모두 7종의 약용 향차(香茶)를 개발했다. 부풍은 전북 부안의 옛 이름이다. 《부풍향차보》는 흔히 차에 관한 최초의 저술로 꼽히는 초의의 《동다송》보다 무려 70여년이나 앞선 의미 있는 저작이다. 〈다본(茶本)〉·〈다명(茶名)〉·〈제법(製法)〉·〈다구(茶具)〉 등의 네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풍 맞았을 때와 추울 때, 더울 때와 열날 때, 감기 들었을 때,..

WinKa 2021.08.21

정민(鄭珉) 교수의 세설신어(世說新語) 5 회

[5] 사천왕사와 문두루(文豆婁) 비법 668년(문무왕 8년), 신라의 운명은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고구려를 멸망시킨 기쁨도 잠깐, 당나라 군대는 전쟁이 끝나고도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친김에 신라까지 쳐서 아예 한반도 전체를 복속시킬 기세였다. 문무왕은 기습적인 선제공격으로 이를 막았다. 당나라가 배은망덕이라며 발끈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670년 당 고종은 장수 설방(薛邦)에게 50만 대군을 주어 신라를 침공케 했다. 대군의 침공을 앞두고 전전긍긍하던 왕에게 명랑(明朗) 법사는 낭산(狼山)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창건하고 법도량을 베풀 것을 주문했다. 사정은 급박했다. 당의 대군을 실은 배들이 벌써 가까운 바다를 가득 덮고 있었다. 명랑은 채색 비단을 둘..

WinKa 2021.08.21

정민(鄭珉) 교수의 세설신어(世說新語) 4 회

[4] 백운동 원림(園林) 다산은 1812년 가을, 유배지의 답답한 마음도 풀 겸 해서 제자 초의(草衣)와 윤동(尹�h)을 데리고 월출산 나들이를 한다. 옥판봉 아래 백운동 이씨의 집에서 하루 묵고 돌아와, 그곳의 12승경을 시로 읊었다. 그림 잘 그리는 초의를 시켜 '백운동도(白雲洞圖)'를 그리게 했다. 이 시와 그림을 묶은 '백운첩(白雲帖)'이 남아 있다. 다산은 이 서첩의 끝에 역시 초의를 시켜 '다산초당도'를 남겼다. 담양의 소쇄원과 함께 강진의 백운동은 우리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몇 안 되는 별서(別墅)다. 민간 정원으로는 특이하게 집 옆을 흐르는 시냇물을 인위적으로 끌어와 뜰의 상지(上池)와 하지(下池)를 거쳐 아홉 굽이 휘돌아 나가는 유상구곡(流觴九曲)의 구조를 갖추었다. 시냇물..

WinKa 2021.08.21

정민(鄭珉) 교수의 세설신어(世說新語) 2 회

[2] '공공의 적' 비둘기 18세기 이후 조선에 불어닥친 웰빙 붐을 타고 한동안 관상용 비둘기 사육이 성행했다.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몇년 전 발견된 유득공(柳得恭·1748~1807)의 '발합경'은 비둘기 사육에 필요한 정보를 갈래별로 정리해둔 책이다. 생김새에 따라 이름도 갖가지다. 전신이 흰 전백(全白)이, 승려의 가사 빛깔 같은 중[僧], 목에 염주를 두른 듯한 전항백(纏項白), 까막점이 있는 점오(點烏) 등 23종이나 되는 이름을 소개했다. 비둘기 사육은 당시 재테크의 한 방편으로 인기가 있었던 듯하다. 최근 번역 출간된 이옥(李鈺·1760~1815)의 '백운필(白雲筆)'에도 새장 기둥에 산 모양을 새겨 넣고 수초 그림을 그리고는 구리철사로 망을 만들어, 한 조롱의 값이 수천 전씩이나 한다고 적..

WinKa 2021.08.21

정민(鄭珉) 교수의 세설신어(世說新語) Ⅰ회

1 - 남계우와 석주명 조선 후기의 서화가인 남계루(南啓宇, 1811~1888)는 나비 그림을 잘 그려 '남나비'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졌다. 그의 집은 한양도성 안 당가지골(현 한국은행 뒤편)에 있었다. 집에 날아든 나비를 평상보복 차림으로 동대문 밖까지 쫓아가 기어이 잡아서 돌아왔다는 일화도 있다. 남계우는 수백 수천 마리의 나비를 잡아 책갈피에 끼워놓고 그림을 그렸다. 실물을 창에다 대고, 그 위에 종이를 얹어 유지탐(柳枝炭으로 윤곽을 그린 후 채색을 더했다. 노란색은 금가루를 스고, 흰색은 진주가루를 사용했다. 그의 그림은 워낙 정확해서 근대의 생물학자 석주명(1908~1950)은 무려 37종의 나비를 암수까지 구분해 낼 수 있었다. 남계우의 그림 속에는 남방공작나비란 열대종까지 있었다. 석주명은 ..

WinKa 2021.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