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

바람의 눈물 (

고향 길 2019. 2. 26. 06:58

바람의 눈물
박미서

그날의 안개비는 바람의 눈물이었다.

목포 앞 바다는 온통 연회색빛 바람의 눈물로 젖어 있었고

우리는 적어도 정색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부터 취하고 싶었다.

바람이 울고 있어,우리도 아마 울고 싶었을 것이다.

목구멍으로부터 넘어오는 덩어리를 억지로 삼키고 싶지 않았다.

덩어리는 덩어리대로 뱉어버리고 싶었다.

빈속에 소주 한잔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부터

내장을 샅샅이 훌터 내리는 듯,짜릿하게 기운을 쫙 빼놓았다.

옷깃을 반쯤 풀어헤치고 조였던 머리와 가슴의 나사를

헐겁게 열어버렸다.~~~중략~~~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희미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바람은 눈물을 머금었지만 파도는 잔잔하고

여름 바다는 시원했다.

새가 날아다니는 형상이라서 비금도라 불린다는 섬에 닿았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노래 부르고 마셨다.

직 바람과 백사장과 바다와 하늘 그리고 우리뿐.

가는곳마다 사진을 찍고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따기도하고

들꽃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바닷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쭈

그리고 앉아 소주를 마셨다.소주가 달다.바람이 소주를 익혔나보다.

아무도 없는 곳,커다란 바위들의 집합체 앞에서 가슴이 북바쳐 오르는

현상을 느끼면서 나는 그져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나 바위는 묵묵하였다.

비금도와 다리로 연결된 도초도의 바닷가 횟집에 앉았다.

더도 덜도 아닌 그만큼의 안개비는

저 멀리서부터 바다와 산을 조금씩 야금거리며 잠식해 오더니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비루한 풍경을 한 살로 섞어 버리고 말았다.

좀 쌀쌀해진 기후에 딱 맞는 따끈한 부침개를 가져와

한 잔의 권주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늘어놓았다.

나에게 신화의 땅은 어디일까.신화의 땅은 존재하기나 할까.

그 섬에는 명사십리의 밀가루같이 고운 모래사장과 연인들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하트 모양의 해변과 '무명 무실 무감한 님' 같은 바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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