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리아 반도

스페인- 메리다 - 세비야 - 코르도바 [ 2001-05-20 ]

고향 길 2018. 8. 23. 14:02

스페인 개요

위치 : 유럽 남부의 이베리아반도
면적 : 50 6030

인구 : 4260 (2003)
인구밀도 : 84.2/
(2003)
수도 : 마드리드

정체 : 입헌군주제
공용어 : 에스파냐어
통화 : 유로화(Euro)
환율
: 0.90Euro = 1$(2003.9)
1
인당 국민총생산 : 1
4300$(2003)

스페인 메리다 정보

메리다 :BC 8년에 건립된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으로 수용인원이 14,000명에 이른다. 인근에 있는 야외공연장은 BC 24년에 건립되었으며 수용인원은 6,000명 정도이다. 특히 무대 뒷편의 32개 대리석 기둥이 이 유적의 규모를 대변하듯이 웅장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메리다 광장에서

 메리다 석곽

우리 일행을 책임진 버스 기사

 스페인

세비야 - 코르도바 - 그라나다 이상3지역을 안달루시아 지방이라한다.

스페인 문화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가장 스페인다운 지역을 돌아보는 날입니다.오늘 방문하는 지역들은 안달루시아 지방의 거점도시들인데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비제의 「카르멘」의 무대였던 세비야,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2,000년의 역사도시 코르도바를 방문합니다. 세비야를 중심으로 이 지역 전체가 투우의 도시고, 아울러플라멩고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스페인 문화의 깊숙한 내면을 엿보기는 어렵겠지만 각 도시를 순회하면서 활기차고 정열적인 그들의 분위기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숙박했던 세비야의 호텔에서 잡은 주변의 모습이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오다 방명록에 일필휘지 몇자 남겼다. 역시 명필 배세일 브라보 !

 황금의 탑

세비야 시내를 흐르는 과달키비르 강의 산 텔모 다리(Puente de San Telmo) 근처에 있는 12각형으로 된 탑이다. 1220년 이슬람교도가 건설한 탑으로 당시에는 탑 위가 황금색의 타일로 덮여 있었기 때문에 황금의 탑이라고 불렀다. 이 곳에서 마젤란이 세계일주 항해를 떠났다는 인연으로 현재에는 해양박물관이 되었다. 황금의 탑은 처음에 강을 통과하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워졌는데, 강 건너편에 있던 8각형의 은색 탑과의 사이에 쇠줄을 매어 놓고 통행하는 배를 검문했다

 산 텔모 다리

스페인 광장

1929년에 열린 스페인·아메리카 박람회장으로 건축가 아니발 곤살레스가 만들었다. 반달 모양의 광장을 둘러싼 건물 양쪽에 탑이 있고, 건물 앞에는 강이 흐른다. 광장 쪽 건물 벽면에는 스페인 각지의 역사적 사건들이 타일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다. 조지 루카스의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2년간 미술과 사진 공부를 했다고 하더니 역시 솜씨가 좋다.

 

 

 

 

 

 

 

 

 

 히랄다 탑

사방 14m의 4각형 탑인 히랄다 탑은 이슬람 교도들이 12세기말에 세웠다. 그 탑 위에 그리스도 교도들은 예배 시간을 알리는 28개의 종을 달았고, 그 위에 신앙을 상징하는여성상을 세워 풍향계 역할을 하게 했다. 탑의 이름도 풍향계(Giralda)에서 나온 말이다. 이렇게 해서 총 98m의 탑이 1565∼68년에 완성되었다. 처음 그리스도 교도들은 탑을 없애려고 했지만, 그 아름다움에 반해 차마 부수지 못했다고 한다.

 

 

대성당을 향해 가고있다.

 

 

 

 

 

 

 

 

 세비야 대성당은 1401년 착공하여 125년 뒤 완공하였다. 이슬람 사원의 유적지에 건설된 대성당은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다음으로 큰 사원이다. 재료로는 돌을 사용하였고,건축양식은 고딕·신고딕·르네상스양식이 섞여 있다. 익랑(翼廊)이 없는 5랑식 성당으로서 기본구조는 직사각형이다. 입구를 지나면 안뜰이 있는데, 뜰 오른쪽에는
지성소(至聖所), 왼쪽에는 그라나다회랑, 회랑 계단 위에는 콜론도서관이 있다. 성당 내부는 너비 76m, 길이 116m의 직사각형이고 장대한 구조와 수수한 장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이곳에는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들로부터 되찾은 영웅 산 페르난도 왕을 비롯하여 스페인 중세기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안치실 앞에는 무리요의 그림 《성모수태》가 있는 회의실, 고야와 수르바란 등의 그림이 있는 성배실이 있다. 안쪽에는 성령강림을 나타내는 스테인드글라스, 왕실예배당을 둘러싼 철책, 15세기의 합창대, 주예배당에 있는 성화 장면이 조각된 황금색 목재 제단 등이 있다. 중앙 복도 오른쪽에 있는 콜럼버스의 묘에는 옛날 스페인을 다스린 네 왕(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이 관을 메고 있는 상이 있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 일행들.

 콜롬버스의 관

 콜롬버스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신영식 내외분.

 

 

 

 

 

 세비야 뒷골목에서 기념사진을 !

 하몬 [Jamon] : 가을 내내 도토리를 먹인 돼지의 뒷다리를 소금에 저렸다가 응달진 통풍잘되는 곳에서 1년 이상 말린 제품인데 스페인들에겐 물론 애주가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코르도바(Curdoba)

과달키비르강(江) 중류,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앙에 위치한다. 8세기에 세워진 이슬람교 대사원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중세에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이슬람교 색채가 남아 있다. 북쪽의 시에라모레나, 남쪽의 시에라네바다 두 산맥 사이를 차지하는 안달루시아 저지는 개발의 역사도 오래되고, 이슬람교도가 전한 관개·농경 기술에도 힘입어 농업지대로서 알려졌으며, 코르도바는 그 농산물 집산지이다. 전통 산업으로 이슬람시대 이래의 피혁제품과 각종 금속 가공이 있다. 그 밖에 주위의 산지에 납[鉛] 등의 광산도 있어서 공업도 활발하다. 페니키아인(人)·카르타고인의 식민지였으나 BC 152년부터 이베리아 반도 로마화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BC 45년 카이사르군(軍)에 의한 폼페이우스파(派)의 대학살이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반도 남부 바에티카의 수도로서 번영하여, 고대 로마의 스토아학파 철학자 L.A.세네카 등을 배출하였다. AD 6세기에 서(西)고트에게 점령당하여 쇠퇴하고, 711년 이슬람 교도의 침입으로 파괴되었으나 756년 아브드 알라흐만 1세가 후(後)우마이야 왕조의 수도로 재건하였다. 10세기의 아브르 알라흐만 3세 시대에 세계 최대의 도시로서 번영하였으나, 그 후 11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여 1236년 카스티야의 페르난도 3세에게 점령당하였다. 그 뒤에도 경제적으로는 중요한 곳이었으나 1808년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되어 지방도시로 전락하였다. 최전성기에는 주택 20만 호, 도서관 장서 40만 권, 이슬람 사원 600여 곳에 이르렀으며, 학문의 자유가 있어서 고대 그리스 철학 ·지리학 등의 연구는 뒤에 유럽의 스콜라 철학이나 르네상스의 전제(前提)가 되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우리 일행이 숙박했던 호텔 모습이다.

 유대인 거리

옛날 유대인이 살았던 메스키타 주변으로 꼬불꼬불한 좁은 길과 하얀 벽의 집들, 창문을 장식한 가지각색의 화분들이 친근함을 준다. 알모도바르문에서 유대인 거리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14세기 무렵에 건조한 유대교회가 있고, 그 가까이에 엘소코가 있다. 엘소코는 스페인식의 안뜰인 파티오를 둘러싸는 것처럼 타블라오와 민예품이 늘어선 건물이다

 

 

 

 

 메스키타

후기 우마이야 왕조를 세운 아브드 알라흐만 1세가 바그다드의 이슬람 사원에 뒤지지 않는 규모의 사원을 건설할 목적으로 785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뒤 코르도바의 발전과 함께 848년, 961년, 987년에 확장하여 2만 5000여 명의 신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완성하였다.

사원의 넓이는 남북 180m, 동서 130m의 거대한 규모이다. 페르난도 대왕이 코르도바를 점령했을 때 메스키타의 일부를 허물었고, 카를로스 5세 때에는 이곳에 르네상스 양식의 예배당을 무리하게 사원 중앙에 지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도가 한 곳에 동거하는 사원이 되었다.


사원 내부에는 줄무늬 석영, 벽옥, 대리석, 화강암 등으로 만들어진 850개에 이르는 둥근 기둥이 아치를 이루며 서 있어 미궁 속을 연상하게 한다. 천장의 정교한 모자이크는 비잔틴 제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배경음악: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