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仁兄들께..... 15일전 탈장이라는 수술을 하였습니다 남들이 하는 이야기가 야-! 그거 별거아냐 아주 간단한 수술야 들은 이야기 대로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라 3 일만에 아무렇지도 않게 퇴원을 하였답니다 그러나 나이가 먹어서 일가 ? 퇴원한 그날 저녁부터 배변 배뇨가 안되고 몸살을 겸해 한 3 일을 몹시 앓은후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 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수술을 위한 마취가 잘 안되어 (척추하반신)고생을 하기는 했는대 그래서 그런것인지 ? 또 몸에 메스를 댄다는것이 크건 작건 그리 쉬운일이 아니라는것을 실감이라도 하는 양.... 결론은 아 - 이런것이 신호 음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신호음에 기력을 잃어 가면서 ㅋ ㅋ 그러나 인생은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일 뿐인데 ...... 하나 둘 뒤 돌아 보면서 이것 저것 뒤척여도 보면서 말이요 仁兄들 ! 나이를 먹어서는 마음으로 살지말고 몸으로 살라고 합디다 생(生)이 있는 한 건강해야 하지 않겠오 환절기에 건강들 조심하시오 정광남 배 ◀ ◆ ◆ ◆ ▶ 위의 안부서신과 함께 첨부파일로 수필 한편을 보내왔다. 마음에 짙은 그림을 남긴 대목이 있어 포스팅 하게된건 아닐까.
"주거니 받거니 반주삼아 술 한 병을 거의 다비면서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술자리 중 부자지간이 마주 앉자 먹는 술자리만큼 술맛 나는 자리는 없다"
어버이날에 주고받은 선물 은산 정 광 남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세월도 참 빠르기도 하다 새싹이 돋아나는 새봄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신록의 계절 5월이다. 5월하면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요즈음 젊은이 들은 어린이 날이다 어버이 날이다 스승의 날이다 해서 행사도 많고 신경 쓸 일도 많아 참 바쁘게 산다. 오늘이 어버이 날이다. 지난 주말 아들 내외가 손자 손녀까지 데리고 와서 식사를 같이 하면서 어버이 날이라고 미리 선물까지 주고 갔고 또 아침에 애들한테 전화까지 받은 터라 어버이 날이라고 별달리 생각 한바는 없으나 해가 기울어 저녁이 되면서 나이가 들어서 일가? 둘만이 사는데서 오는 공허감일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허전한 마음이 든다. “여보, 애들한테서 연락 없었어?” 하고 빤 한 이야기를 묻는다. “참! 당신도 며칠 전 다녀갔고 아침에 전화까지 한 애들인데 무얼 바래요?” 하고 핀잔이다 사실은 집사람이 혹시나 섭섭히 할까봐 내가 우정 한 말이다 “여보! 내가 맛있는 것 사줄게 떨거덕 대지 말고 나갑시다.” 하니 싫지 않은 표정으로 나선다. 차를 몰고 나가니 왜 그렇게도 차가 많은지 괜히 차를 가지고 나왔나 후회가 들 즈음 핸드폰이 울린다. 아들로부터 온 전화다 “집에 전화를 안 받으시던데 밖이 신가 봐요” “응! 저녁이나 하려고....” “바빠서 늦었는데 시작 전이시면 저와 하시죠.” “응! 그래! 애들은?” “지영 엄마는 일이 있어 애들하고 집에서 하겠답니다.” “무엇을 드시겠어요.” “아무거나 간단한 것으로 하지 뭐.” 아들이 안내 하는 대로 조촐한 자리에 마주 앉는다 오래만 에 아들 하고만 앉은 자리다 아마도 며느리의 배려인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엊그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 같은데 어느새 사회인으로 불혹의 나이를 넘긴 아들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흰머리가 드문드문 보인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의 흰머리 까락을 보고 안쓰럽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련만 바쁘게 사는 애들을 보면 마음 한구석 씁쓸한 마음이 든다. 우리세대는 고생스러웠고 생활의 질은 낮았어도 요즈음 젊은이들처럼 정신적 갈등은 없었던 것 같다. 한 삶을 잘살아 왔다는 생각이 든다. 주거니 받거니 반주삼아 술 한 병을 거의 다비면서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술자리 중 부자지간이 마주 앉자 먹는 술자리만큼 술맛 나는 자리는 없다 잔을 기우리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또 우리 부부는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듣는다. 술을 못 먹는 집사람은 아들 이야기 듣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표정이다 나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다 일찍이 부모 곁을 떠나 학창시절을 보내고, 사회생활에 뛰어 들어 뒤 돌아볼 여가도 없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님의 울타리가 무엇 인지를 알았고 부모님의 그늘이 큰 것임을 알았다 그 이듬해 부장으로 승진을 하여 집사람을 비롯하여 온 가족이 축하를 해 주었으나 마음에 차지를 않아 주말에 사령장을 들고 아버님 산소를 찾아 고告해 올리고 마음을 달랜 적이 있다 나는 지금도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친구가 부럽다 아마도 불효자의 변인지도 모른다. 자식의 자랑을 한껏 들어 줄 수 있는 부모, 자식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 보아주는 부모, 그것이 우리 내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아들이 걸어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어느 해 어버이 날 보다도 행복한 날이었기에 살며시 아내의 손을 잡아본다 2015년 어버이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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