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山 鄭光男 에세이

병상(病床) 일지 (부제 : 외로움) / 은산 정 광남.

고향 길 2018. 8. 25. 10:58


병상(病床) 일지 (부제 : 외로움)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밤

어디선가 고요한 밤의 적막을 깨고 나에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고향의 봄"의 음률이 들릴 듯 말듯 아주 작은 소리로 늦은 밤 병상에서 잠못 이루는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소리 죽여 듣고 있는 저 사람은 무순 생각으로 이 노래를 듣고 있을까 혹시나 지난 시간들의 파노라마 속에서 중환의 몸을 뒤척이며 병상을 적시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진다.

나에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나도 모르게 입속으로 응얼거려 본다. 내 어릴 적 의 고향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게 그런 시간들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 어린 시절, 내가 자란 고향은 참 아름답고 꿈이 어린 고향이다. 울긋불긋 꽃 대궐 고향의 향수를 뒤로한 채로 나는 내일 수술대에 올라서야 한다.

감기 몸살이나 건강검진으로 동내 병원을 찾은 일은 있으나 입원을 하거나 더욱이 수술을 받기 위해서 병원을 찾은 일이 없었든 나로서는 당황스럽고 두렵기까지 하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받을 탈장 수술은 간단한 것으로 별것 아니라고 해서 나도 가볍게 생각은 하고 있으나 입원을 해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을 하기 위한 각종 검사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멀쩡한 나도 서서히 환자가 되어 가면서 피곤하기도 하고 조금은 불안하기도한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그뿐 아니라 늦은 밤 시간까지 간호사 와 의사가 병실을 방문하여 혈압과 체온을 체크하는가하면 수술준비를 위한 안내 및 설명을 하고 동의서작성을 한다. 동의서라는 것이 수술과정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가정 하에 작성된 문항에 대하여 동의서를 받는 것이니 무순 이의가 있겠는가. 이의가 있다한들 이미 코가 꿰인 송아지처럼 고삐를 내어준 처지에 끌고 가는대로 따라가는 무기력의 극치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병원에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대비책으로 환자나 보호자는 불행한 일이 없기만을 바랄뿐이다.

옆자리 병상의 환자는 시골에서 서울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권유로 올라왔다는 직장암 환자 다. 낮부터 아들딸들을 비롯하여 형제자매 친척들까지 면회객들이 몰려와 위로한다고 오랜 시간을 떠들다가 면회 시간이 다 되었다는 핑계로 각자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전하고는 뿔뿔이 가버리고 덩그러니 부부만 남는다.

적막이 흐른다. 내외도 피곤하였는지 조용하다. 병문안이 환자를 위한 것인지 내 마음 편 하자는 인사치례를 위한 것인지 하루 종일 오고 가고 환자나 보호자가 쉴 틈이 없다. 생각해 볼일이다. “메르스사태 이후 면회객을 제한한다고는 하나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인위적으로는 안 되는 일로 환자를 둔 주변사람들의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아픔도 외로움도 환자 본인의 몫이요 한 삶을 함께 살아온 반려(伴侶)자의 몫이다

만감이 교차하여 뒤척이는데 옆의 환자에게 간호사와 의사가 와서 바빠서 늦었다는 인사와 동시 내게 했던 것처럼 일사천리로 수술에 대한 안내가 시작된다. 환자나 보호자가 생각할 여지도 없이 차마 듣기 어려운 이야기도 거침이나 망설임도 없이 속사포를 쏘듯이 쏟아낸다. “환자는 현재 직장암으로 상당히 위험한 단계에 와있고 직장뿐 아니라 전립선까지 전이가 되어 있으며 위() 등 다른 곳으로 전이 여부는 열어서 조직검사를 해보야 알 수 있으며, 직장 수술부위가 항문과 1.5cm 밖에 안 되어 전이를 생각해서 항문을 제거해야 하며 항문을 제거한 후에는 배설물을 위한 배변 통을 달아야 합니다.”

가름막 옆에서 듣고 있는 나도 위축이 되어 침이 마르고 숨이 막히는데 당사자인 환자나 보호자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상상이 안 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다. “그러나 너무 걱정 하지마세요, 보조 기구가 잘 만들어져 사용하시는데 전연 어려움이 없으십니다. 다소 번거롭고 불편한 점은 있겠으나 그래도 얼마나 다행입니까? 더 늦기 전에 발견하였고 이런 의술과 기술이 없었다면 어떻겠어요. 그렇죠? 그렇죠. 아버님?” “-!”라고 답을 한다. 무엇이 네! 고 무엇이 다행이란 말인가? 가름 할 수가 없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러면 대중목욕탕은 갈수가 없겠네요.” 그 많은 궁금한 것 중에 목욕탕에 가는 것이 궁금했던 환자! 절망에서 온 질문일까? 아니다 삶에 대한 욕망에서 한 질문일 것이다. 그는 반드시 삶의 의욕으로 병고를 이겨 낼것이라고 믿는다.

몇 년 전 집사람이 대장암 수술을 받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환자 본인이나 한 삶의 반려자인 남편으로서 보호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에 느끼던 먹먹한 무기력함을, 옆의 환자에게서 또다시 보고 있는 것이다

수술 후에도 여러 번에 걸친 항암치료를 비롯한 오랜 투병 생활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일이다. 암흑의 긴 터널을 뚫고나오는 것과 같은 자기와의 싸움이요 외로움의 싸움이다. 자기와의 싸움과 외로움의 싸움에서 진다면 모든 것이 끝이 난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의술이 좋다고 해도 나의 아픔과 외로움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에는 내가 아파야하고 내가 외로워야 하는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련의 여러 일들이 오래전에 읽었던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 하라는 책의 한 문구(文句)를 되새겨 보게 한다. 저자 나카무라 진이치는 사람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생로병사의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한 병원의 의사이며 요양병원의 소장이다. 생생한 경험을 통하여 전해주는 메시지는 "죽음이란 자연의 섭리대로 돌아가는 것으로 어떠한 의료 행위도 생로병사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일 뿐 죽음을 거부하거나 피해 갈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한다. 그는 의료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으며, 지나친 의료행위는 고통만 주어질 뿐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지적 하면서 의료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많은 부분을 공감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상의 일들이 욕심만으로는 안 되는 것을 살아오면서 느껴 알고 있다. 더욱이 나고 죽는 것은 저자가 말하는 대로 생로병사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주어진 대로 순응해 가면서 최선을 다할 뿐 욕심을 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밤이 너무 늦었다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이 궁금하였던 환자가 자기와의 싸움과 외로움의 싸움에서 잘 이겨내어 그가 살던 고향 마을로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병상에서의 하루를 돌아보며 나 또한 좋은 수술(手術)이기를 바란다

 

2016. 10 어느 날 병상에서



[배경음악: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