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추억 만들기

同窓會 秋季 野遊會 - 1 [ 2008-10-17 ]

고향 길 2018. 1. 4. 07:26

이번 동창회 야유회는 강화도로 결정되였다. 새로선임된 김종대 회장이 주관하는 행사인데 어려움이 많었을겄이다. 당일치기 일정으로 서울근교 명승지는 대충 다 가보았을 겄이고, 비용 역시 한정된 한도내에서 집행하려면 보통 고민이 안되였으리라. 그나마 100명이 넘는 최대 인원의 이동행사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풍광위주도, 문화유적지 탐방위주도, 먹거리 위주도 아닌,다소 개성이 없는 밋밋한 야유회가 되였다.시간에 쫒기는 당일치기 야유회인데다 교통지옥으로 그 악명이 높은 강화도를 택한데다 오늘따라 짙은 안개로 석모도 왕래하는 페리호들이 결항을 하는 통에 우리가 선착장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승선을 기다리는 차량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어 예상외 많은 시간을 길거리에 버린 결과가 되였다.

 몇년전 왔을때와 변함없이 노점상들이 보문사 입구에 진을 치고 있다. 동남아쪽으로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광경을 많이 볼수가 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포근한 고향의 정취를 일깨워줘 반갑고 고맙다.

 

普門寺
바다를 건너 차량으로 15분간 들어가면 낙가산 서쪽바다가 굽어 보이는 곳에 보문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선덕여왕 4(635) 회정대사가 금강산으로부터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절을 세우고 보문사라 하였습니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서 절을 창건 후 14년이 되던 해에 고씨성을 가진 어부가 바닷가에서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그물로 낚아올려 절의 우측 석굴에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로부터 이 석굴에 기도를 하면 기적이 이루어져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절 뒤편에는 마애석불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앞에서 보이는 서해풍광 또한 일품입니다. 보문사 경내에는 300여명의 승려들이 수도했을 당시 사용하였다는 큰 맷돌과 향나무, 1975년에 주조한 범종이 있습니다.

 힘차게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들 있다.

 보문사 중창불사에 지대한 공헌을한 분을 영원히 기리기 위한 공덕비가 세워져있다. 조국의 명운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순국 열사들의 기념비는 제대로 다 건립되여 있는지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든다.

 족히 수백년은 된듯 싶은 향나무 밑에는 아직은 따가운 가을 햇빛을 피해 옹기 종기 모여들 있다. 아직은 단풍이 다 들지 않고 찾어온 방문객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고있다.역시 큰나무 다운 넉넉함이 엿보인다.

 

이 친구 만한 풍부한 성량과 정감가는 바리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방송 3 사 성우와 탈랜트중에서 찾기가 그리 수월치 않을겄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가전제품 CF 의 명구 처럼 이친구야 말로, 첫발을 잘못디뎌 아나운서나 성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하긴 승려와 수도사 300여명의 식사를 마련하려면 맷돌도 이정도는 되여야 될듯싶다.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뭔가 중차대한 문제를 논하고 있는듯 한데...나이에 걸맞게 쉽게 쉽게 넘어갑시다.

 

 10년뒤에 다시 이자리에 모일수 있을까? 모인다면 몇명이나 될까? 문득 궁금한 생각 ! 생각할게 그리도 없냐, 겨우 이런 생각? 딱도 하십니다!

 

 

 

 이자리도 뭔가 심각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 모양이다. 두분 다 진지한 표정이다.

 탕수육 내기 다시 한번 더 해보자고 하는 친구다. 고3때 재미있는 일화가 다 늙어서도 가까운 동창간에는 술 안주로 회자되는 에피소드 한 토막의 주인공이다.

 김장철이 돌아왔음을 알려주는 그림 한장을 담었다. 추젓을 비롯해 김장에 필요한 양념들을 정성껏 진열해 놓았다. 순무김치가 이고장 특산품이라는데...왜?

 새벽6시서 부터 밤10시경 까지 우리일행들을 안전하게 운반해준 고마운 버스들이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돌아왔다. 보문사 관광을 글자 그대로 주마간산으로 휘둘러 보고 서둘러 찾어온 예약 식당이다. 벌서 시간은 1시가 지났다.

 100여명의 식사준비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고는 하나 서빙이 보통문제가 아니다. 이웃집 아줌마들을 총동원해 아마도 서빙을 하고있으리라!

 

 4명 기준, 식탁 하나에 푸짐한 게탕과 전어회 한접시가 제공되였다. 게탕의 문제는 어덯게 게 속살을 잘 발라 먹느냐 하는 문제인데 이 점에 난 영 젠뱅이라 집에서도 아에 먹기를 포기하고 국물만 먹는 실정이다.

 

 

 

 

[배경음악: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