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추억 만들기

50년 전통의 도가니 탕 전문집 대성집을 방문하다 [ 2010-11-16 ]

고향 길 2018. 1. 4. 10:49

           서대문 근처에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도가니 탕 전문식당이 있으니 점심 식사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처음엔 종로3가에서 5호선 전철을 타려고 생각했다가 시간을 보니 시간 여유가 많다. 광화문 까지 걸어가 전철이던 버스던 결정을 하기로 마음먹고 광화문에 도착해 보니 천연개스 푸른색 버스 720번이 서대문으로 간다. 도착해 시간을 보니 아직도 1시가 되려면 30여분 남았다. 몇년만에 서대문 4거리에 서서 사방을 둘러 보니 감회가 깊다.

 

        아래 약도는 대성집 찾아가는 길과 전화번호을 표기해 놓은 겄이다. 

 

독립문과 서대문 4거리 중간 지점에 있는 대성집은 그 첫 인상이 지나온 50년 풍상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값싸고, 맛있고, 오래된 집이라면 십중팔구 그 외모가 허술하고 내부 공간은 비좁고 어딘가 비위생적인 느낌을 풍기게 마련이다. 

위 간판을 보면 50년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함을 한눈에 알수가 있다. 전화 번호가 없다. 예약을 받지 않으니 전화번호을 표기할 필요가 없다! 찾아오는 손님 만으로도 맞이하기 벅찬데 더 이상의 홍보는 필요가 없다!

한우 도가니 탕이 \9,000? 이렇게 유명한 음식점에서 설마 수입산 소고기를?  수입산 소고기라고 밝히고도 @12,000원 이상은 일반적으로 받는데...

마늘 무침이라 해야 하나, 하여간 양념해 내 놓았는데 건강 보양식 먹는 기분이 든다.

우선 도가니 한 접시에 막걸리와 소주로 분위기을 잡아 나갔다.

요즘 도가니 값이 워낙 비싸 3명이 한 접시 \20,000 으로는 부족하다. 중국집 음식 솜씨는 자장면을 먹어 보아야 알수 있듯이, 탕을 먹어 보아야 그집 진면목을 알수가 있는 법, 탕 내용물의 양과 질, 그리고 국물 맛을 음미해 보니, 과연 명불허전이라 먼길 찾아 올만하다. 왜 1시전에 오면 문전성시로 줄을 서 기다려야 된다는지 이해가 간다. 첫째 전혀 누린내가 나질 않는다. 국물은 담백하면서도 진국이라 잡맛이 전혀 없다. 도가니도 인심좋게 푸짐하다. 먹는 음식은 즉석에서 판가름 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찾아가는 길이 불편해도, 음식 맛과 주인장 마음이 따뜻하면 철리길 마다 않고 찾아오게 마련이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으로 술과 식사을 했으니 이보다 더 행복 할수는 없다!

 

     식사을 끝내고 보니 아직도 해는 중천이라, 3시가 아직 안되였다. 서대문 형무소 탐방이냐, 인근에 있는 경희궁 탐방이냐, 결정은 경희궁과 역사 박물관. 아래 그림은 경희궁 약도 이다. 

 

                                                                                                                         위 그림은 인터넷에서 퍼옴

경희궁(慶熙宮)

경희궁(慶熙宮)서울시에 있는 조선 시대 궁궐로 광해군 10(1623)에 건립한 이후, 10대에 걸쳐 임금이 정사를 보았던 궁궐이다. 서울시에 있는 5대 궁궐 중에서 서쪽에 자리하여 서궐로도 불렀으며, 새문안 대궐, 새문동 대궐, 아주개 대궐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의 이궁(離宮)으로, 경운궁(덕수궁)과 홍교로 연결되어 있었다. 부지 7 28백 평에 정전, 동궁, 침전, 별당을 비롯해서 모두 98채의 건물이 들어섰던 경희궁은 경복궁, 창경궁과 함께 조선왕조의 3대궁으로 꼽힐 만큼 큰 궁궐이었으며 본래는 100여 동이 넘는 전각들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심하게 훼손되어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정문이었던 흥화문과 정전이었던 숭정전, 그리고 후원의 정자였던 황학정까지 세 채에 불과하다. 해방 후에 서울고등학교가 위치하였다. 경희궁터는 사적 271호로 지정되었고, 1980서울고등학교가 서초구로 이전한 이후 서울 시립 미술관 등으로 사용되다가, 다시 건물을 허물고 경희궁의 일부를 복원하였다. 서울고등학교의 별칭과 경희대학교의 명칭 등이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서울 고등학교 출신인 柳 선생은 감회가 남다를수 밖에 없고, 자연 이곳을 방문한적이 있다보니, 이곳 저곳, 역사 박물관 자리와 연계도 하고, 고등학교 교정 자리와도 연계해 설명 해 주니 이해에 도움이 된다.

흥화문 [興化門 ]

흥화문(興化門)조선시대 광해군 10(1618)에 세운 경덕궁(현재 경희궁)의 정문이다. 1910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세우기 위해 경희궁의 전각들을 헐고, 몇몇 건물들을 매각하고 이건하면서 흥화문도 1915 남쪽 담장으로 옮겨졌다가 1932 장충동 박문사로 옮겨져 정문으로 사용되었다.[1] 그 후 박문사에 영빈관이 들어서고 신라호텔이 서면서 호텔 정문으로 사용되다가 1988 경희궁의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경희궁의 정문이었던 흥화문은 원래 궁궐의 동남쪽 모퉁이, 지금의 구세군회관 빌딩 자리에 동향하여 서 있다가 1915 도로공사로 남쪽으로 이전되었으나, 현재 복원된 흥화문은 원래의 위치와 향이 다르게 남향으로 되었다. 원래 경희궁에는 동문인 흥화문 외에 흥화문 왼쪽에 흥원문(興元門), 오른쪽에 개양문(開陽門), 서쪽에 숭의문(崇義門), 북쪽에 무덕문(武德門)이 있었다.  

 

 

 

 

 

 

崇政門

숭정전(崇政殿)은 광해군 8(1616)에 세운 것으로, 경희궁의 정전이다. 숭정전 일곽은 남향한 경사지에 축대를 조성하여 그 위에 건물이 들어서 있다.[4] 숭정전은 행각으로 둘러졌으며, 뒤로는 자경전이 있다.[4] 동ㆍ서 행각은 남에서 북으로 가면서 바닥과 지붕이 단을 이루며 높아지도록 조성되었다.[4] 숭정전은 이중 월대 위에 세운 정면 5,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이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이건되어 현재 동국대학교 안에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고, 현 위치의 건물은 1989 12월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1994 10월 주변 행각과 함께 완공한 것이다.

 

숭정전 내부의 모습. 조선시대때 숭정전 건물내부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는데, 가운데 어좌가 있고 그 뒤에는 일월오악병[ 一月五嶽屛 ]을 둘러 놓았다.

 

資政殿

월래는 국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논하던 편전건물이지만 국왕이 거주하지 않았던 경희궁의 특성상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의 건물은 일제 의해 없어지고 지금의 건물은 새로이 복원한 건물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삼아 찾아왔다 똑딱이 카메라로 몇장 기념사진 찍고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장소 이다. 뒷편은 전혀 둘러 보질 못했다. 날자을 별도로 잡아 경희궁과 역사 박물관을 반나절 계산으로 방문을 해 볼만한 곳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제공하는 동영상입니다.

<세 이방인의 서울 회상> 특별전 방송동영상 - SBS
<세 이방인의 서울 회상> 특별전 방송동영상 - MBC
<세 이방인의 서울 회상> 특별전 방송동영상 - KBS
서울TV 클릭부서탐방 방영분
신문로 박물관나들이
디지탈전시안내 홍보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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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강국 답게 역사 박물관 디지털 홍보가 볼만하다. 역시 잠시 머물다 그대로 나왔다.

 

 

 

 

 

내수동? 뒤안길에 위치한 추억의 카페을 찾아 왔다.

 

가볍게 병맥주 몇잔 하고 나왔다. 주인장이 바뀌었으니 추억의 오솔길이 단절될수 밖에!

마나님 말씀인즉, 금일 김장 김치 담그느라 녹초가 되였으니 저녁식사 해결하라는 분부이시다. 미금역에서 하차 안동 국시로 간단히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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