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함 59

三寸之舌

정중규 전 ㈜세스코 고문 정중규 전 ㈜세스코 고문 '삼촌지설'(三寸之舌)은 세 치의 혀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고사성어이다. 원소의 70만 대군이 전략 실패로 조조군에게 대패하자 원소는 피를 토하고 쓰러진다. 유비는 형주유수 유표에게 의탁하기로 하고 책사 손건을 사자(使者)로 보낸다. 손건을 맞은 유표는 "자네 목을 조조에게 바치고 화친으로 형주를 지키자고 하는데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라고 말했다. 손건이 말한다. "소인의 목으로 형주가 태평하다면야 기꺼이 제 목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소인이 조조라면 제 목을 보고 크게 웃을 것입니다. 제 목으로 형주도 못 지킬뿐더러 화만 부르지요. 유공, 제 목 하나로 강적을 둘이나 만드시렵니까?"라고 했다. "뭐야? 또 다른 강적이 누구지? 조조 말..

보석함 2021.07.23

三寸之舌(삼촌지설)

구변(口辯)이나 변설(辯舌)이 뛰어난 사람을 가리킨다. 삼촌설(三寸舌)이라고도 한다. ​ 기원전 257년 서쪽 강국 진(秦)나라가 조(趙)나라 수도 한단(邯鄲)을 포위하자, 조나라 왕은 평원군(平原君)을 남방의 초나라로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게 하는 맹약을 체결하려 했다. 평원군은 문무를 겸비한 스무 명의 인재를 뽑으려 했고 19명은 선발했으나 마지막 1명이 문제였다. 그러자 3년 동안 눈에 띄지 않던 식객(食客) 모수(毛遂)란 자가 나타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평원군을 탓하면서 자신은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之錐·낭중지추) 수준이 아니고 송곳의 자루 수준이라고 호기롭게 자천(自薦)하는 것이었다. 주머니는 평원군이고 자루는 물론 모수요, 송곳의 끝은 다른 식객들의 하찮은 재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의 무례..

보석함 2021.07.23

囊中之錐(낭중지추)

유래 전국시대(戰國時代) 말엽, 진나라(秦--)의 공격(功擊)을 받은 조나라(趙--)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宰相)인 평원군(平原君)을 초나라(楚--)에 보내어 구원군(救援軍)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遂行員)이 필요(必要)한 평원군(平原君)은 그의 3000여 식객(食客)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명을 뽑지못한 채 고심(苦心)했다. 이 때에 모수(毛遂)라는 식객(食客)이 「나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하고 나섰다. 평원군(平原君)은 어이없어 하며 「그대는 내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 하고 물었다. 그가 「이제 3년이 됩니다.」 하고 대답(對答)하자 「재능(才能)이 뛰어난 사람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

보석함 2021.07.23

毛遂自薦(모수자천)

유래 전국시대(戰國時代) 말엽, 진나라(秦--)의 공격(功擊)을 받은 조나라(趙--)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宰相)인 평원군(平原君)을 초나라(楚--)에 보내어 구원군(救援軍)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遂行員)이 필요(必要)한 평원군(平原君)은 그의 3000여 식객(食客)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명을 뽑지못한 채 고심(苦心)했다. 이 때에 모수(毛遂)라는 식객(食客)이 「나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하고 나섰다. 평원군(平原君)은 어이없어 하며 「그대는 내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 하고 물었다. 그가 「이제 3년이 됩니다.」 하고 대답(對答)하자 「재능(才能)이 뛰어난 사람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

보석함 2021.07.23

結草報恩(결초보은)

「풀을 묶어서 은혜(恩惠)를 갚는다.」는 뜻으로, 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恩惠)를 잊지 않고 갚음. 무슨 짓을 하여서든지 잊지 않고 은혜(恩惠)에 보답(報答)함.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유래 진나라(晉--)의 대부(大夫) 위무(魏武)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첩(妾)이 한 명 있었다. 어느날 위무(魏武)가 병으로 몸져눕게 되었다. 아직 제정신일 때 그는 아들 위과(魏顆)에게 일러 말했다. 「내가 죽으면 이 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改嫁)를 시켜라.」 하더니, 그 뒤 병이 심하여 죽게 되거늘 또 말하되 「내가 죽으면 저 여인(女人)은 순장을 시켜라.」고 유언(遺言)을 했다. 죽음에 이르러 이과가 말하되 「차라리 정신이 있을 때의 명령(命令)을 좇아서 이를 개가(改嫁)를 시키리라.」 그리하여..

보석함 2021.07.20

苛斂誅求(가렴주구)

가(苛): 가혹할 가 렴(斂): 거둘 렴(염) 주(誅): 책망할 주 구(求): 구할 구 ​ 가혹(苛酷) 하게 세금(稅金)을 거두거나 백성(百姓)의 재물(財物)을 억지로 빼앗음 ​ 이 가렴주구는 구당서(舊唐書)에 나오는 말로 구당서(舊唐書)는 당나라(唐)의 정사(正史)로 이십사사(二十四史) 가운데 하나이지요. 춘추시대 때 공자의 모국인 노나라는 조정의 실세인 걔 손자(季孫子)가 세금 등을 가혹하게 징수함(苛斂誅求)으로써 백성들이 시달림을 당하고 있는정치적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출전] 구당서(舊唐書) ​ [유래] 어느 날 공자(孔子)가 제자들을 데리고 태산(泰山) 기슭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한 여인(女人)이 세 개의 무덤 앞에서 목 놓아 울고 있었는데, 이 여인(女人)의 울음소리에는 각별한..

보석함 2021.07.20

匹夫之勇(필부지용)

유래 맹자(孟子)는 왕도(王道) 정치(政治)의 실현(實現)을 위해 여러나라를 돌며 유세(遊說)하기로 하고 먼저 양나라(梁--)로 갔다. 혜왕(惠王)은 맹자(孟子)를 정중히 맞이하고서 이웃 나라와는 어떻게 국교(國交)를 맺는 게 좋겠는가를 물었다. 이에 맹자(孟子)가 「대국(大國)은 소국(小國)에게 받드는 마음으로, 겸허(謙虛)한 태도(態度)로 사귀지 않으면 아니 되옵니다. 이는 인자(仁者)라야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지만, 은나라(殷--)의 탕왕(蕩王)이나 주나라(周--)의 문왕(文王)은 이미 이것을 행했습니다. 또한, 소(小)가 대(大)를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도리(道理)이옵니다. 그러나, 무왕(武王)의 할아버지 대왕이 그것을 행했기 때문에 주나라(周--)는 뒤에 대국(大國)을 이루게 되었고, 월나라(..

보석함 2021.07.19

多多益善(다다익선)

多 : 많을 다 多 : 많을 다 益 : 더할 익 善 : 좋을 선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한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천하를 통일한 후 왕실의 안정을 위해 개국 공신들을 차례로 숙청하였다. 초왕(楚王) 한신(韓信)은 천하 통일의 일등 공신으로 항우군의 토벌에 결정적 공헌을 하였지만, 통일이 완성된 한 왕실로서는 위험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본래 항우의 수하에 있다가 유방이 촉으로 들어간 후 한나라에 귀순한 인물이었고, 제(齊)나라를 정복하였을 때는 스스로 제왕에 즉위하였으며, 초에 들어가서는 항우의 장수였던 종리매(鐘離眛)를 비호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고조는 계략을 써 그를 포박한 후 장안으로 압송하고는 회음후로 좌천시켰다. 후일 거록(鉅鹿) 태수 진희(..

보석함 2021.07.19

管鮑之交(관포지교)

유래 춘추 시대 제(齊)나라에 관중과 포숙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동업으로 장사를 하면서도 서로 뜻이 맞고 상대방에게 너그러운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그러다가 똑같이 관리가 되면서 각자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관중은 제나라 군주인 양공(襄公)의 공자(公子) 규(糾)의 보좌관이 되었고, 포숙아는 규의 이복 동생 소백(小白)을 섬기게 된 것이다. 그 무렵 양공의 사촌 아우 공손무지(公孫無知)가 양공을 시해하고 임금 자리를 빼앗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바람에 목숨이 위태롭게 된 규는 관중의 도움을 받아 함께 이웃 노(魯)나라로 달아났고, 소백은 포숙아와 함께 거(莒)나라로 달아났다. 그러나, 이듬해 공손무지가 살해됨으로써 상황은 급변했다. 규와 소백 어느 쪽이 임금 자리를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가..

보석함 2021.07.19

袴下之辱(과하지욕)

이야기로 보는 고사성어의 유래 ‘어려운 처지에서 참아 낸 굴욕’ 유방이 항우를 무너뜨리고 한나라를 세운 데에는 대장군 한신의 공이 컸다. 그를 빼고는 초나라와 한나라 대결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과정에서 한신은 배수진 · 다다익선 · 사면초가 · 필부지용 등 여러 고사 속 주인공이 되었다. 한신은 젊었을 때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다. 워낙 가난해 밥을 빌어먹을 정도였고 어머니가 죽었을 때 장례조차 치를 수 없었다. 한번은 그가 남창정이란 마을 정장1) 집에 얹혀서 살 때였다. 몇 개월을 함께 살다가, 한신을 미워하던 정장 아내가 밥을 해서 몰래 침실로 가져가 먹어 버렸다. 밥때가 왔는데도 음식을 주지 않자, 한신은 분위기를 눈치 채고 정장을 떠나 버렸다. 한신이 이렇게 남에게 빌붙어 살다 보니 그..

보석함 2021.07.19